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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모바일 어플로 알라딘에 들어가 필요한 책을 고른다. 근데 왜 그런 날 있잖은가? 스트레스 받고 무기력에 허우적거릴 때, 느닷없이 소비사회 노예처럼 시발-비용을 지불해야만 끝이 나는 그런 날...

 

그런 날이면 굳이 오프라인 서점에 가곤 한다. 동네 상봉동 리디북스가 주로 애용하는 스팟인데, 도심지 초대형서점만큼은 아니지만, 지름신을 영접하기에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자주 들르는 편이다.

 

대개 철학/사회과학코너를 쭉~돌다가 하나를 집어 드는데, 오늘은 예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책이 있어서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90년생이 온다>이다. 나도 뭐 80년대 생이라 소위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기도 하니 당사자 격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애써 찾아볼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재차 자기 얼굴을 거울로 들여다보는 심정이랄까?’ 괜히 그런 심리가 발동해 저건 한 번 맘 먹고 봐야겠다 하면서 벼르고 있었다.

 

특히 요즘 젊은것들은 도통 조직문화에 길이 잘 안 들어~“라는 말이 남 얘기 같지 않았고, 그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또래 다수가 안고 있는 사연인 거 같아서 더욱 들여다보고픈 맘이 들었다.

근데 웬걸 <90년생이 온다>를 집어 들고 옆 서가로 옮기는데,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가 눈에 들어왔다. 책 제목만으로 금세 예상하시겠지만, 말 그대로 직업(노동) 환경 격변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타임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유연한 노동을 추구하는 프리랜서의 확산에 관한 이야기를 표제로 삼고 있다.

 

세간에 화두가 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에 대한 추구는 자연히 노동시간이 자유로운 프리랜서 직종에 대한 관심을 수반하게 마련인데, 이 또한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인지라 덥석 책을 집어 들어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바로 책장을 넘겨본다. 원제는 ”Gigged: The end of the job and the future of work“이다. 올해(2019) 2월에 번역 출간한 책인데, 원서는 2018년에 출간한 거란다. 저자 새라 케슬러(Sarah Kessler)는 세계적으로 핫-한 소셜 언론사 <Quartz>의 부편집장이다. 아무래도 학자가 아닌 기자의 글이라 읽기에 건조하진 않다. 여러 사례와 인터뷰 내용이 주를 이룬다. 여하튼 책 제목에 커다랗게 박힌 <Gig>이란 게 뭔가 보니, ‘-타임 노동이 아닌 임시직들을 보통 ”Gig“이라고 칭하는 모양이다.

 

생소한 용어를 뒤로하고 좀 더 책장을 넘겨 살펴보니 ”O2O(Online to Offline) 플랫폼 서비스가 노동의 형태에 끼치는 영향을 주로 담아내고 있었다. 특히 차량공유 플랫폼 서비스인 <우버, Uber>를 자주 예로 들었는데, <우버>가 세계적으로 흥행 광풍을 일으킨 동시에 논란을 일으킨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에 거론하는 듯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우버>가 국내에 상륙할 때에도 그랬고, 카카오 <카풀>과 최근 <타다> 쟁점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런데 <우버>의 경우 가시적 사물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많이 알려진 거고, ‘비가시적 전문 기술자체를 공유하는 플랫폼도 있다. 쉽게 말해, <온라인 아웃소싱 플랫폼>을 생각하면 된다. 저자는 아마존이 2005년에 설립한 <메커니컬터크, Mechanical Turk>를 사례로 들고 있지만, 국내에도 이러한 온라인 아웃소싱 플랫폼은 많이 있다(명칭을 달리해 프리랜서 마켓혹은 재능마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IT업계 쪽이 아웃소싱 루트를 기반해 프리랜서로 나선 이들이 많은데, IT분야뿐만아니라 디자인, 마케팅, 번역, 통역, 컨설팅, 상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노동자들이 온라인 아웃소싱 플랫폼을 통해 의뢰자와 만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크몽, 숨고, 오투잡과 같은 사이트들이 활발하다.

 

 

여하튼 저자의 논지에 따르면, 온라인 아웃소싱 플랫폼을 통해 노동시간의 유연성은 확실히 보장받는 장점이 있다. 왜냐하면 풀-타임 노동이 아니라 내가 직접 의뢰자를 선택해 노동시간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가 딴청을 피워도 잔소리할 상사도 없고, 사내정치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언제든 일을 잠시 쉬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따질 때의 장점이지, 여기에도 그늘진 면은 있다. 저자가 말하는 해외 사례가 아니더라도, 앞서 예로 든 국내 아웃소싱 온라인 플랫폼에 들어가 잠시만 훑어봐도 난점들이 눈에 뜨인다.

 

 



 

우선 단가(비용)의 문제다. IT분야든, 웹디자인이든, 분야를 막론하고 의뢰자를 두고 프리랜서들 간에 경쟁하는 환경이다 보니 단가를 낮춰 의뢰자를 확보하는 홍보방식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게다가 분야별 상위 랭크자들을 중심으로 격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월-단위 수주 건수를 총합해도 수입이 풀-타임으로 근무할 때보다 높으리란 보장이 없다. 더구나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중개 수수료를 떼어가기까지 한다. 참고로 <크몽>의 경우 수익 구간별 차등수수료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50만원까지는 20%의 수수료를 뗀다. 때문에 섣불리 온라인 아웃소싱 플랫폼만 믿고서 다니던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간, 도리어 밤낮없는 노동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

 

결론적으로 저자인 새라 케슬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위에서 언급한 장단점을 아우르는 데에 있다. 그저 O2O 플랫폼 사업가들이 내놓는 장밋빛 전망만을 앵무새처럼 옮기는 데에 있지 않다. 비교적 충실히 반대급부적인 면을 조명하고 그와 관련하여 성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일과 사적인 삶의 밸런스를 추구하는 세태가 된 마당이라 경직된 풀-타임 노동을 굳이 고수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이는 앞으로도 많아질 것이다. 그런 와중에 기술의 진보와 네트워킹의 고도화로 이전과는 다른 노동 환경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대격변을 예고하는 일각의 소리도 있다.

 

하지만 인류는 이와 같은 <기술 혁신의 전환기>를 처음 지나는 게 아니다. 19~20C 산업화 시기를 지나면서 <기술의 진보><노동 환경의 변화>를 아울러 체감한 역사가 있다. 기술의 진보가 변화시킨 노동 환경에 처음부터 익숙했던 사람은 당시에도 아무도 없었다. 다만 기계 동력이 추동하는 생산의 쾌감과 극단적인 효율의 추구가 시대적인 바람을 탔다. 그러나 그 결과 공장이 밀집한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도시가 급격히 팽창한 일이나, 12시간이 넘는 중노동이 반복되는 일상, 아동노동 착취의 문제까지 갖가지 병리적인 현상이 잇달아 나타났다.

 

한편 <사회안전망>이 대대적으로 개편된 것도 바로 이때, 산업화 이후다. 사회병리적인 문제를 푼다고 원점으로 돌아가 노동자를 다시 농장으로 내쫓지 않았다. 노동자와 기업가 그리고 정부가 함께 손을 맞잡고 표준근로시간을 제정하는 등 기본권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세웠다.

 

분명 기술의 진보로 과거에 비해 <편의성>이 증대한 것은 사실이다. 굳이 비즈니스가 아니라 일상의 영역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자동차도 전깃불도 없는 과거로 돌아가는 건 무모한 일이다. 그만큼 우리는 기술 진보의 혜택을 온몸으로 누리고 있다. 이는 대격변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하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이야기이다.

 

그러나 편의성과 효율의 증대에만 힘을 싣다 보면 놓치는 구석이 있다. 바로 <사람>에 대한 문제다. 기술 혁신에 앞장서는 혁신가들이 효율만 추구하는 기업가(자본가)로만 비추어져 좋을 게 무엇이겠는가? 어차피 돈 벌자고 하는 일이니 상관 말라는 건 지나치다. 또는 나는 기술 혁신이나 할 테니, 이에 따른 사회혁신은 다른 이들의 과제로 남겨 두겠다는 것도 너무 선을 긋는 셈이다.

 

미래는 누구도 겪어보지 않은 시간이자, 가보지 않은 길이다. 멀리 보는 안목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삶이 팍팍하면 천리안을 가졌던 사람도 금세 근시안으로 바뀌게 마련이다. 각자도생하듯 누가 돌부리에 걸리든 말든 자기 갈 길만 휘적휘적 가는 뒷모습은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협력과 상생의 노력이 언제나 버무려져야 한다.

 

누구도 겪어보지 않은 시간에 대해 말하는 지금, 우리에겐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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