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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고리즘, 여론 양극화의 주범>

NO-아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갈수록 거세다. 화력이 가히 가공할 수준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외부의 적을 향해 똘똘 뭉칠 만도 한데 그게 아니다. 한일관계에 대한 국내여론이 진영논리를 따라 양분됐다. 물론 덕분에 토착 왜구들이 부유물처럼 떠올라 친일청산의 기회를 맞이한 이점도 있다. 그렇지만 기분이 영 구린 건 어쩔 수 없다. 뭐랄까. 일상이 뒤틀리는 느낌이랄까. 토착 왜구들의 망언은 매체로 접하고 말지만, 직장의 꼰대들이나 피붙이 꼰대들이 시시때때로 토해 놓는 극우 논조의 썰을 마주하는 건 피부로 접하는 일상의 문제다.

근데 소셜미디어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론의 양극화 현상이 더 심화 된 느낌이다. 소셜네트워킹이 가져다준 환경에 감탄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각자 취향과 정파성에 따라 알아서 떠 먹여주는 <알고리즘>에 알게 모르게 지배당한 채 살고 있다. 사실 꼰대들이 유튜브를 달고 사는 이유도 그놈의 알고리즘 때문이다. 좋아하는 얘기만 골라서 떠먹여 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절대 자기들 입장과 다른 민주적/공익적 콘텐츠는 그들의 타임라인에 나타나지 않는다.

알고리즘이 조정하는 소셜네트워크, 그에 따라 요동치는 여론... 단지 관심사가 유사한 것끼리 묶어 추천하고 타임라인에 보여주는 이 별거 아닌 듯한 일을 제공하는 인터넷 플랫폼 사업이 사람들의 생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식생활의 편식이 사람을 해롭게 하듯, 생각의 편식이 사람들의 일상을 해롭게 하는 형국이다.

 

2. <보수교회 안에 작동하는 알고리즘>

근데 이처럼 인터넷 여론을 쥐락펴락하는 온라인 알고리즘 말고도, 자생적인 알고리즘 장치들이 오프라인 도처에 있다. 소셜미디어의 세례를 받은 일종의 인격화 된 알고리즘 장치들인데, 대표적인 예로 보수교회 목사들이 그러하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 많게는 매일 새벽까지 포함해서 한주에 7-8번을 혼자 강단에 서서 썰을 푸는 그 입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방송국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논조는 목사 개인의 것만이 아니다. 교회 안의 보수화 된 신자들과 교류하며 강화된 결과물이다. 일각에선 생각 없는 꼰대 목사들이 신자들의 생각을 조종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지금의 보수교회들은 이미 그런 상태를 넘어섰다. 카리스마틱한 화술과 조직장악력이 뛰어난 목사 1인이 혼자 끌어당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신자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을 끊임없이 제공해줘야 한다. 근데 대체로 보수대형교회 신자들이 70-80년대 고도성장기를 지나온 보수층이라 그들의 구미에 맞는 내용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종교성에 심취하거나 혹은 사회적 이슈를 한껏 거세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는 강남권 교회뿐만 아니라 여타의 교회들도 마찬가지다. 제법 사람이 모인다 싶은 교회는 지역을 막론하고 거의 다 그런 식이라 보면 된다. 왜냐면 정파성을 거세하고 모든 이들의 구미를 적당하게 맞추는 기성상품 같은 설교를 제공해야 사람들이 안 떨어져 나가고 모여들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신자들이 목사의 설교를 관심 있는 주제들로만 선별하는 과정은 마치 타임라인을 내 구미에 맞게끔 구성하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과 유사하다.

그래서 최근 제법 명망 있는 목사들 몇몇이 강단에서 반-아베 및 극일의 정서를 성급하게 봉합하려 했던 언사는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 아닌가 싶다. 비난과 비판은 해당 목사들이 받고 있지만, 이는 엄연히 해당 교회 신자들도 구조적으로 오랫동안 공모한 결과다.

 

3. <알고리즘으로 인한 집단 자폐>

앞서 말한 대로 알고리즘의 촉매 역할로 소셜네트워킹에 가속이 붙었으나, 관심사가 유사한 집단들끼리만 똘똘 뭉치다 보니 흡사 집단 자폐 현상이 일어난다. 자기네 집단 안에서만 유통되는 정보들로 근거를 갖다 붙인 <카드 쌓기> 논리들이 여기저기 범람한다.

게다가 자기 논리의 허점을 되짚어 볼 겨를도 없이 동일 집단 내의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우리 얘기가 맞다!”라고 강화까지 시켜 주니 집단 자폐의 벽을 뚫고 나오기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일군의 학자들은 최근 각종 혐오 이슈가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로 집단 자폐를 꼽기도 한다. 도통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는 생각의 편식과 무한증식이 숱한 타자들을 바깥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4. <성스러움으로 치부되는 교회의 집단 자폐>

한편 교회의 집단 자폐 현상은 다소 독특하다. 그들의 역사의식 부재에서 비롯한 무-시간성과 그 단절은 그들의 종교 안에서 성스러움으로 치환된다. 교회는 오직 그들 종교가 말하는 신적-영원성으로만 가득하다. 일단 교회에 들어서면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단절되는데, 종교성에 바탕 한 영원이라는 시간만 가득하다고 여기는지라 그 단절감을 알아챌 수가 없다.

물론 정상적인 기독교는 시간에 대한 몰이해를 근간으로 하지 않는다. 역사와 시대의 현장을 신적 안목으로 껴안는다. 그러니까 작금의 몰이해는 왜곡된 보수교회들이 그러하다는 얘기다.

이들의 시간 인식이 그렇다고 해서 영원이라는 관념에 충실히 기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전이 기록되었던 수천 년 전의 시간에 그저 박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자꾸 origin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고, -텍스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도 모두 그 박제에 충실 하느라 그런 거다. 근데 그게 왜곡된 보수교회 안에서는 신실함으로 혹은 성스러움으로 치부된다. 다시 말해 역사성을 소거하는 게 종교적 성스러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과정의 어색함을 신자들은 잘 느끼지 못한다. 왜냐면 그에 상응하는 만큼 만족감을 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자들의 만족감이란 역시나 철저하게 그들 자신에게로 집중되는 것들이다. 즉 종교적 체험, 성찰을 건너뛴 채 베푸는 은총의 선언, 정서적 위안, 경전에 바탕 한 자기합리화 등등.

이를 볼 때 보수교회는 마치 외딴 섬 같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이 세상에 장소를 두지 않는 그들만의 유토피아 같기도 하다. 특히 신앙적인 부분에서 관념에 함몰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5. <집단 자폐의 알고리즘, 과연 깰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현실 속에서 왜곡된 보수교회들의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집단 자폐로 인해 역사의식이 소거된 소리, 생각의 편식과 무한증식이 낳은 배제와 혐오의 소리... 그런데 이 소리를 양산하는 왜곡된 교회 안에 작동하는 알고리즘, 과연 깰 수나 있을까?

글쎄... 저따위로 작동하는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는 멀쩡한 교회들도 분명 있다고 알릴 수는 있어도, 저들의 폭주하는 알고리즘에 브레이크가 걸리길 기대하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 제아무리 뿌리를 뽑으려 해도 매음굴로 사창가로 어김없이 찾아드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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