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주의의 취약점은 개별 주체의 양심과 판단에 모자람 없이, 이들 구성원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전제 그 자체에 있다. 그러나 현실 속 개별 주체들은 판단의 역량 편차도 심할 뿐 아니라 사회적 의사결정에도 그리 잘 훈련된 편이 아니다. 단, 이들 주체가 동시대를 지나며 반복적으로 사회적 학습을 한 경우는 다르다. 지난 판단의 실책으로부터 반면교사 하는 가운데 주체의 역량은 커진다. 이를테면 능동적으로 정보를 비교하고 선별하며, 사회적 논의에 따르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며 주체는 변화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벌어진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과 탄핵 등과 같이 굵직한 이슈들은 80년대 민주화 항쟁 이후 다시금 마주한 사회적 학습 환경인 셈이다. 문제는 학습 효과가 얼마나 오랫동안 영향을 끼칠 수 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아수라장이다. 신천지로 대구 경북이 비상이 걸리더니 이젠 교회들이 말썽이다.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모이지 말라고 해도 모이는 교회들이 있더니 이젠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가 예배 자제하라고 해서 코로나가 들어왔다나 뭐라나? 정말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근데 이렇게 교회들이 막 나간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했다. 사실 코로나 이슈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교회들이 입에 거품 물고 외치던 게 조장 그리고 조장 아니었나? 차별금지법 반대한다고 각 지자체 흔들어 놓고, 인권 논의 자체를 색깔론으로 뒤집어씌우는 데에 앞장선 것도 교회였다. 도대체 차별하지 않고 사람 존중하며 지내자는데 왜 그리 반발일까? 주구장창 끝까지 동성애 이슈만 물고 늘어지면서 매번 했던 소리가 자기들이 말하..
우리 중 다수는 지금 저 치열한 대구 현장에 가본 적이 없다. 그저 안전을 명분 삼아 이전보다 덜 접촉하고 격리된 듯 지낼 뿐이다. 그럼에도 마치 세상 돌아가는 판을 다 보고 있는 듯 생각하고 판단한다. 방구석에 틀어 박힌 채 저마다 색안경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바깥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여긴다. 근데 재밌는 일은 곧 선거를 앞둔 의원 나부랭이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도 이와 같다는 점이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바깥 세상을 본다. 현장과 괴리된 정치가 왜 자꾸 난무하냐고 따지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주권자인 시민도 이토록 현장과 유격이 있는데 대리자인 정치인이라고 다를까? 소위 말하는 언론의 신뢰도는 이 유격을 좁히느냐 뒤틀어서 벌리느냐에 달렸다. 근데 주권자(정치인)의 과 사건의 사이에 렌즈처..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습니다. 너무도 청천병력같은 일이라 뉴스를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특수부 축소 및 폐지의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는 지금, 공수처 설치 가시화를 직접 눈으로 보셔야 할 인물이 자리에서 내려오다니요 ㅠ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은 합니다. 그간 가족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도 굳건히 버티던 인물이었으니깐요. 하지만 시민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남는군요 사퇴 이후 행보에도 지지하고 응원하겠습니다. 패퇴하는 군의 장수 같은 마음일랑 갖지 마시길 바랍니다. 전선의 전환 혹은 확대라 생각하며 마음을 모으겠습니다. 법무부 장관이었던 조국이라는 공직자에게 박수를, 대한민국의 시민이었던 조국에게 응원을, 고통을 감내하고 버텨 온 조국 가족들에 위로를, 함께 서초동으로 향했던 촛불들..
1. 난데없이 가 품절이란다. 이유는 항암치료에 탁월하다고 해서다. 주변에 대장암으로 고생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의 가족 카톡방에도 이 내용이 공유됐다고 한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품절사태가 벌어졌다고 뉴스가 나온다. 정말이지 ‘오죽하면’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심지어 최근 폐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개그맨 김철민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팬들이 보내온 강아지 구충제 요법을 따라 한 번 시도해 보겠다고 알린 상태이기도 하다. 해당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하자 식약처와 대한약사회는 복용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냈다. 그런데 환자와 가족들이 권고를 쉽게 받아들일까? 사실 강아지 구충제 관련 기사가 포털 메인을 장식했을 때, 댓글부터 살펴봤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
1. NO-아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갈수록 거세다. 화력이 가히 가공할 수준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외부의 적을 향해 똘똘 뭉칠 만도 한데 그게 아니다. 한일관계에 대한 국내여론이 진영논리를 따라 양분됐다. 물론 덕분에 토착 왜구들이 부유물처럼 떠올라 친일청산의 기회를 맞이한 이점도 있다. 그렇지만 기분이 영 구린 건 어쩔 수 없다. 뭐랄까. 일상이 뒤틀리는 느낌이랄까. 토착 왜구들의 망언은 매체로 접하고 말지만, 직장의 꼰대들이나 피붙이 꼰대들이 시시때때로 토해 놓는 극우 논조의 썰을 마주하는 건 피부로 접하는 일상의 문제다. 근데 소셜미디어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론의 양극화 현상이 더 심화 된 느낌이다. 소셜네트워킹이 가져다준 환경에 감탄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각자 취향과 정파성에 따라 알아..
우화에 보면, 강을 건너려고 전갈이 개구리에게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개구리는 전갈의 독침이 부담스러워 반문한다. 그 독침으로 찌를 거 아니냐고. 이에 전갈은 그러면 강을 어떻게 건널 수 있겠냐며 개구리를 설득한다. 결말은 전갈이 개구리를 독침으로 찌르고 강에 빠진다는 얘긴데, 전갈이 최후에 하는 말이, “자기는 찌르는 게 습성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하루에 천리길 강을 건너는 개구리가 있다 한들 뭐하겠나? 강을 건너는 일에 제아무리 숭고한 목적이 있다 해도 들쳐 업고 가야 하는 게 전갈이라면, 선뜻 나서는 개구리는 없다. 우화 속 개구리는 전갈의 말에 속아 최후를 맞이하지만, 현실 속 개구리들은 그렇지 않다. 상대가 전갈이라 판단되면,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피한다. 강을 건너는 일이 문제..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다가 두 눈을 의심했다. 말 같지도 않은 헤드라인을 봤기 때문이다. 참나! 책 안 읽으면 원시인처럼 된다니... 대번에, ‘원래 애들은 원시인인데 점차 문명인이 된다는 소리인가?’ 또, ‘그다지 문해력이 높지 않은 옛날 어르신들은 원시인이라는 소리인가?’ 갖가지 생각들이 스쳤다. 헤드라인만 보고도 어떤 논조로 말할지 안 봐도 비디오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클릭해 들어가 봤다. 허나 역시나! 였다. 글의 목적은 알겠다. 요즘 사람들 책 많이 안 읽는데, 책 많이 읽자는 얘기다. 그런데 책에는 우리를 일깨우는 사상과 가치들이 담겨 있으니 좀 더 책을 열심히 보자는 근본적인 얘기가 아니라, 책 안 읽으면 원시인 된다는 게 골자였다. 글쓴이가 누군지 나중에 찾아보고야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