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에 보면, 강을 건너려고 전갈이 개구리에게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개구리는 전갈의 독침이 부담스러워 반문한다. 그 독침으로 찌를 거 아니냐고. 이에 전갈은 그러면 강을 어떻게 건널 수 있겠냐며 개구리를 설득한다. 결말은 전갈이 개구리를 독침으로 찌르고 강에 빠진다는 얘긴데, 전갈이 최후에 하는 말이, “자기는 찌르는 게 습성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하루에 천리길 강을 건너는 개구리가 있다 한들 뭐하겠나? 강을 건너는 일에 제아무리 숭고한 목적이 있다 해도 들쳐 업고 가야 하는 게 전갈이라면, 선뜻 나서는 개구리는 없다. 우화 속 개구리는 전갈의 말에 속아 최후를 맞이하지만, 현실 속 개구리들은 그렇지 않다. 상대가 전갈이라 판단되면,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피한다. 강을 건너는 일이 문제..
라울 바네겜의 책을 읽는다. 프랑스 68혁명 당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다. 가슴에 꽂히고도 남는 격언과도 같은 문장들이 일품이다. 일례로 와의 인터뷰에서 ‘노동’과 ‘인간’의 관계를 꼬집은 그의 언급은 그만의 통찰을 잘 보여준다. - 노동의 필요성은 인간을 가축의 지위로 떨어뜨린다. 문장 하나로 그로테스크한 현실 인식을 뇌리에 새긴다. 그런데 그가 꼬집어 말하는 60년대나 지금이나 마주하는 일상의 부조리는 여전하다. 특히 책 전반부에서 다루고 있는 일상 속 에 대해 분석한 내용은 비틀어진 인간관계와 사회구조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사람들과 거리 두고 살라 종용하는 그 끝에 단절이 있다는 걸 감춘 채 처세술을 가르치는 책들, 집단이나 사회를 보는 눈을 가리고 오로지 각자 스스로 닦달하다 보면 지금보다는..
답답한 마음이 도통 가시지 않을 때, 나는 서점에 간다. 먼저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서 요즘은 무슨 책들이 자본의 부양을 받아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나 둘러본다. 여전히 자본의 증식과 자기계발, 인간관계 조언에 해당하는 책들이 대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역시나 별다를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 자연스럽게 서점 귀퉁이에 있는 철학, 사회학, 문화사 코너로 발길을 돌린다. 그러다 정말 속이 꽉 막힌 날엔 만지작거리다 내려놓길 반복하는 책 한 권을 들고 계산대로 간다. “삐~익!” 바코드를 찍어 결제하는 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체증이 조금이나마 내려가는 걸 느낀다. 평소 필요한 책은 온라인으로 구매하면서, 이런 날은 꼭 제값을 다 주고 책을 손에 쥐고 돌아온다. 흔히 말하는 이다. 엿같은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