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이세요?" 나이를 묻는다. 물음 하나로 내 몸뚱이가 이 땅에 시작된 시간을 측정한다. 축적된 시간은 보통 권위의 표시로 본다. 위계질서에 익숙한 언어로는 그렇다. 질문에 응답함과 동시에 사회문화적인 질서를 반영해 적당한 곳에 배치된다. 같은 질문을 가 묻는다. 각종 전자기기가 웹사이트 개인정보 기입란을 면전에 띄워 놓고 인간들의 문자로 번역해 묻는다. 상업적인 용도로 혹은 설문 연구의 용도로 각기 쓰임새를 달리해 수집한다. 시간을 무게로 달아 분류하지 않고, 쓸모를 기준으로 분류한다. 에서 로 변하면서, 이처럼 나이를 묻고 답하는 주체들의 맥락이 변했다. 인간이 묻던 질문을 기계가 대신 묻는다. 물음에 반응하는 맥락도 변했다. 나이를 묻는 상대방 눈에 어리는 힘의 정도를 가늠하는 대신, 여백을 채..
“결혼? 그거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잘 살아.” 친구의 말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혼해서 잘 사는 사람들 봐봐! 거의 서로 다른 성향끼리 만난 사람들이더라.” 또 다른 친구의 말, 역시나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도대체 어느 이야기가 맞는 걸까? 배우자 선택!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좋을까? 아니면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이 좋을까? 두 이야기 모두 맞는 구석도 있고 사람마다 다르니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이야기 다 맞는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중구난방으로 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서로 “비슷해서” 유익이 되는 부분과 서로 “달라서” 유익이 되는 부분이 한 커플 안에서 동시에 작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런 상황인 것이다. “난 저 ..
설렜다. 달콤하기만 했다. 그야말로 깨가 쏟아졌다. 그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깐... 그러나 깨도 한정 없이 쏟아지지 않는 법! 쏟아지는 깨도 다 떨어지고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다. 마냥 설레기만 하다가도 이렇게 틀어져 버리기 쉬운 게 남녀관계다. 물론 결국에는 풀린다. 대개의 경우 속이 타는 대립각을 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의 손을 내밀지만, 불안하다. 화해는 했지만 조만간 또 싸울 것 같은 예감에 불안한 것이다. 그 사람이 싫은 게 아니다. 단지 싸움이라는 게 싫은 것이다. 싸우는 건 누가 대신 싸워주고 나는 그냥 달콤한 연애만 하고 싶다. 그렇다. 누군들 싸움을 즐기겠는가? 하지만 나와 다르기 때문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상대의 매력도 그 다름이 참을 수 없는 차이로 다가올 때..
"인지와 정서" 사이에,혹은"논리와 감정" 사이에갈등이 심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수의 연구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실제로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사실보다 '자신들의 신념과 맞지 않는 사실을 훨씬 더 혹독하게 평가'한다. 이와 같이 비판 정신이 편향적으로 민감한 것은 초등학교 초년 시절에 벌써 나타난다. 성인들의 정치 성향과 관련된 예를 들어 보아도, 시민들은 교육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이미 지니고 있던 정치적 선호를 지지하는 쪽으로 관련 정보에 대한 해석을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는 더 많은 지식이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유도된 오류를 지탱하는 자기합리화를 위한 지성적인 자원을 더 많이 제공하..
마을에 떠돌이 대장장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마침 대장간이 없던 찰나에 대장장이가 왔으니 마을 사람들도 잘 됐다고 여겼습니다. 가위도 좀 사고 호미도 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장장이는 가위도 호미도 안 만들고, 오직 큰 칼만 만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대장간 안에서 큰 칼만 여러 개 만들어 쟁여 놓았습니다. 기이한 대장장이의 모습에 사람들은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습니다. 전쟁에서나 쓸 만한 큰 칼만 주구장창 만들어 내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대장장이에게 찾아 와 위험하게 전쟁에서나 쓸 칼을 왜 그렇게 만드느냐고 했습니다. 대장장이가 답했습니다. “전쟁이 임박했으니 전쟁에서 쓰는 칼을 만들 수밖에요…….” 이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은 대장장이를 더욱 이상하게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