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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과 개구리>, 독침이 문제다

Scott's manager 2019. 3. 23.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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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과 개구리> 우화에 보면, 강을 건너려고 전갈이 개구리에게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개구리는 전갈의 독침이 부담스러워 반문한다. 그 독침으로 찌를 거 아니냐고. 이에 전갈은 그러면 강을 어떻게 건널 수 있겠냐며 개구리를 설득한다. 결말은 전갈이 개구리를 독침으로 찌르고 강에 빠진다는 얘긴데, 전갈이 최후에 하는 말이, “자기는 찌르는 게 습성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하루에 천리길 강을 건너는 개구리가 있다 한들 뭐하겠나? 강을 건너는 일에 제아무리 숭고한 목적이 있다 해도 들쳐 업고 가야 하는 게 전갈이라면, 선뜻 나서는 개구리는 없다. 우화 속 개구리는 전갈의 말에 속아 최후를 맞이하지만, 현실 속 개구리들은 그렇지 않다. 상대가 전갈이라 판단되면,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피한다.


강을 건너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개구리를 찾기 어려운 게 문제가 아니라, 독침이 문제다.


관련해서, 여전히 탐독하며 읽고 있는 라울 바네겜(Raoul Vaneigem)의 글을 가져와 본다. 덩어리진 문단마다 메시지가 하나씩 들어차는 일반서적들과 달리 아포리즘처럼 한 문장 한 문장에 무게감 있는 생각들이 들어차 있어서 좋다. 여기서는 <일상생활의 혁명>중 12장 "희생"에 담은 그의 생각을 옮겨 본다(pp.146-160).  




"모든 명분들은 모두 비인간적이다... 힘과 거짓말이 인간을 부수고 길들이는 데 실패하는 곳에서는 유혹이 사용된다. 권력에 의해 사용되는 유혹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짓말의 떳떳함 안에 내재한 구속이고 정직한 사람의 마조히즘이다. 거세에 불과한 것을 헌신이라고 부르고 여러가지 예속 상태를 선택하는 것을 자유의 선택이라고 호도해야 했다. "의무를 다했다는 감정"이 각자를 자기 자신에 대한 사형집행인으로 만든다."


"나는 <기초적인 평범함들>(<상황주의 인터내셔널>, 7호, 8호)이란 글에서 어떻게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노예의 실제 희생을 주인의 신화적 희생으로 덮는지에 대해 보여 주었다. 한쪽은 일반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실제적 권력을 정신적으로 희생하고, 다른 한쪽은 그가 겉으로만 공유하는 권력을 위해 자신의 실제적 삶을 물질적으로 희생한다."


"옛날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조국을 위해 죽는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본을 위해 죽는다." 그들의 후계자들은 비슷한 말로 욕을 먹는다.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를 위해 투쟁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지도자들을 위해 투쟁한다."... 희생의 서랍에는 바닥이 없다."


"혁명을 위해 희생을 해야 하는 순간부터 혁명은 멈춘다. 혁명은 길을 잃고 물신화된다...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거세란 없다... 개인은 축소 불가능하다. 그는 변한다. 하지만 교환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회 개혁 운동들에 대해 한번 살짝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그 운동들은 비인간적인 것을 인간화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명예를 걸면서 교환과 희생의 쇄신만을 요구했다."


"희생의 정신에 의해 지배되는 예술적 형태들을 향해 퇴보하면서는 각각의 인간 존재 안에 살아 있는 예술가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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