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동화, <떠돌이 대장장이>

<떠돌이 대장장이>

마을에 떠돌이 대장장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마침 대장간이 없던 찰나에 대장장이가 왔으니 마을 사람들도 잘 됐다고 여겼습니다. 가위도 좀 사고 호미도 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장장이는 가위도 호미도 안 만들고, 오직 큰 칼만 만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대장간 안에서 큰 칼만 여러 개 만들어 쟁여 놓았습니다.

기이한 대장장이의 모습에 사람들은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습니다. 전쟁에서나 쓸 만한 큰 칼만 주구장창 만들어 내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대장장이에게 찾아 와 위험하게 전쟁에서나 쓸 칼을 왜 그렇게 만드느냐고 했습니다. 대장장이가 답했습니다.

“전쟁이 임박했으니 전쟁에서 쓰는 칼을 만들 수밖에요…….”

이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은 대장장이를 더욱 이상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르신 한 분이 대장장이를 찾아왔습니다.

“거 만드는 큰 칼 하나 주소.”

대장장이는 만들어 놓은 칼 중에 좋은 놈을 하나 골라 어르신께 드렸습니다.

“얼마요?”

“안 받습니다. 그냥 가져가 쓰시지요.”

어르신은 알겠다는 눈빛만 남기고 칼을 챙겨 돌아갔습니다.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팽이치기를 하다 작대기가 망가진 걸 들고 왔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대장장이는 잘 고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대장장이는 아예 새로 나무를 깎아 팽이를 새로 만들고 작대기를 고쳐 매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신이 난 아이들이 대장장이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이 큰 칼은 뭐에 쓰나요?”

“전쟁이 나면 쓰지.”

“지금은 전쟁도 아닌 데 왜 이리 많이 만들어요?”

“전쟁이 임박했으니 많이 만들지.”

그러자 아이들은,

“그럼 그 칼 나도 주세요.”

“나도 주세요.”하며 칼을 달라 했습니다.

대장장이는 아이들 키만 한 칼을 잘 싸서 품에 하나씩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고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얘들아, 칼 멋지지? 칼은 이렇게 쓰렴. 전쟁은 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도 너희들 곁에 이 칼이 늘 있어서, 전쟁이 임박한 듯이 자기를 여미면서 살면 좋겠다. 그래야 자신을 돌아보는 진짜 어른이 되거든.”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저마다 칼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대장간에 와서 팽이도 치고 구슬도 치며 실컷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대장간에서 놀 궁리를 하며 아이들이 찾아 왔는데, 대장간이 비었습니다. 대장장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간밤에 대장장이가 마을을 떠났습니다. 다만 대장간에는 그 동안 대장장이가 만든 큰 칼들만 수북하게 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마을 이장이 된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마을 정비 사업을 하려고 동네를 돌다 대장간을 발견했습니다. 그 옛날 큰 칼들 위에는 먼지만 가득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전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달라진 게 하나 있었습니다. 대장장이가 마지막으로 당부하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얘들아, 전쟁은 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도 너희들 곁에 이 칼이 늘 있어서, 전쟁이 임박한 듯이 자기를 여미면서 살면 좋겠다. 그래야 자신을 돌아보는 진짜 어른이 되거든.”

마을 이장은 오래 전 같이 뛰놀던 친구들을 만나 대장장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칼이 무슨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동안 자신을 돌아보며 살려고 애썼다고. 처음에는 칼을 보며 돌아보고, 돌아보고 하던 게 점차 습관이 됐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게 몸에 배었다고 말했습니다. 방구석에 세워 둔 칼은 녹이 슬고 먼지가 쌓였지만, 살다보니 그 큰 칼이 보이지 않는 칼이 되어서 자기 마음속에 살아 있더라고 했습니다.

그 날 이후, 마을 이장은 대장간을 다시 열었습니다. 사람을 사서 그 옛날 큰 칼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장은 아이들에게 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옛날 대장장이가 하던 것처럼, 당부의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