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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표현의 자유가 권력 앞에 어떻게 짓밟히는지 지난 정권을 통해 국민들은 함께 깨달았다그런데 의정부고의 졸업사진 사전검열전자기기 회수징계 엄포는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졸업사진은 학교 홍보물이 아니다엄연히 학생들 소유다촬영 비용도 졸업앨범비 명목으로 학생들이 지불한다.


지난겨울 광장에서 학생들은 함께 촛불을 들었던 동등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여전히 통제의 대상이다. 물론 통제를 비집고 졸업사진이 유포되고 있다. 학생들은 안다. 통제를 비집고 나오기만 하면 얼마나 큰 광장이 있는지 이미 안다. 광화문까지 가지 않아도 네트워크화 된 온라인 광장이 자기들 손끝에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안다.

 

교사들도 모를 리 없다. 어찌 보면 알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함부로 콘텐츠를 온라인에 게시할 경우 어떠한 여파들이 초래되겠느냐며 훈육했을 것이다. 통제가 아니라 미디어 교육을 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는 교육 현장이 얼마나 교육자-학습자라는 수직적 통제 구조 안에 갇혀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거꾸로 교실이 어떻고 플립러닝이 어떻고 하면서 학습자 중심의 교육 환경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무성해도, 이렇게 교과목 외의 학교생활에서 통제가 빈번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물론 교사들이 이전 정권에 우호적이었던 일부 대중을 의식하는 바는 이해하겠다. 만약 군대 전역 기념사진을 정치적 이슈들을 패러디하며 찍어댔다면 문제가 있다. 군대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조직이니 말이다. 그러나 학교는 군대가 아니다. 학교로 걸려오는 항의 전화를 너희들이 어떻게 감당할 셈이냐며 훈육하는 순간 학생 하나하나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군인 신분으로 취급당하고 만다. 그리고 학교 업무가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집단성 안에 갇히고 만다. 일종의 전체주의다. 즉 미시 파시즘의 한 형태인 셈이다.

 

이 일을 지나며 유의미한 경험을 했다고 애써 다독일 수도 있겠다. 특히 고등학교를 조만간 졸업하고 성인으로 발을 내딛게 될 학생들에게, 어차피 사회는 학교보다 더하다며 말을 건네는 건 꽤나 이 상황을 잘 마무리 짓는 멘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부당한 통제를 가했던 교사들을 감추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 속 일상화 된 부조리를 학습시키는 말은 될지언정 현재 마주한 부조리는 별거 아닌 것처럼 치부하기 때문이다.

 

만약 교사들이 부당한 통제 대신 다른 자세를 취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탄핵 정국을 이끈 촛불 민심에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들의 마음도 컸다. 자녀 세대에는 부당한 힘을 행사하는 목소리들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시 마주한 부당한 힘과 목소리를 몸으로 막아 선 것이다. 빗발치는 항의 전화를 대하는 교사들도 그런 마음이었으면 어땠을까?

 

학생들의 표현을 조금 더 여유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른 한편 단 며칠만이라도 훈육의 대상을 학생들이 아니라 항의 전화를 해댄 못난 어른들로 삼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교육은 교과목 수업이 아닌 이러한 어른들의 뒷모습을 통해 이뤄질 때 더 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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