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Columns

성경 읽기가 쉽지 않은 이유

Scott's manager 2019. 1. 25. 15:06
반응형
SMALL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진리에 다가서는 한 방편이 된다. 교회에서 그리고 신앙인들 사이에서 성경 읽기는 권면해 마지않는 일이 되었다. 심지어 성경 통독 운동, 일 년 일독 프로그램 등이 장려되었다. 이러한 장려 프로그램 덕분에 조금이나마 성경과 친숙해진 신앙인들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성경을 읽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다수의 신앙인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경 읽기는 왜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일까? 단순히 의지의 문제일까? 쉼 없이 돌아가는 현대 사회의 스케줄이 내리 누르는 압박 때문일까? 성경 속 역사와 문화가 우리의 것과 다르기 때문일까? 물론 이에 대해 거론하는 여러 근거들이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경이 지니는 매체성과 관련하여 매체 철학적 접근을 해 보고자 한다.

 




성경은 기록된 책이다. 성경책에는 문자와 문장들이 가득하다. 문자라는 매체를 통해 진리의 내용이 표현된 셈이다. 즉 문자라는 형태가 비가시적인 진리의 추상체를 담지하면서 가시화했다. 바꿔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의 내용이 문자라는 저장 매체를 통해 나타났는데, 우리는 저장 매체의 외형인 문자를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읽어 진리의 내용에 다가선다는 것은 문자를 읽고 해독하여 껍데기를 벗겨 내어 그 안에 담긴 진리의 의미를 추출해 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자 매체의 활용은 진리의 내용을 언제든 두고 볼 수 있는 편리함을 가져다준 대신 용이하지 않은 접근의 문제를 야기했다. 이는 문자라는 매체가 지닌 태생적인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오래 전 소크라테스도 지적했는데, 문자의 발명과 관련하여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실린 그의 말은 다음과 같다.

 




"당신의 발명(문자의 발명)은 배우는 자의 영혼에 망각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들은 외적으로 씌어진 문자에 의존해 스스로는 기억을 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당신이 발견한 것은 기억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회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당신은 제자들에게 진리를 주는 게 아니라 진리의 유사물을 주게 될 뿐입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듣게 되겠지만 아무것도 배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박식한 것처럼 보여도 대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진정한 지혜가 아닌 지혜의 외양만을 갖춘 성가신 동반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 플라톤, <파이드로스> 중 소크라테스의 언급


 



환언하자면 문자라는 외부의 매체에 저장해 놓은 이상 굳이 머릿속에 기억해 두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때에 따라 들춰서 읽어 보고 의미를 '회상'해 볼 수는 있어도 더 이상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수고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문자의 속성을 정확히 간파했던 것이다.

 

이를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예를 들면 휴대폰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0여 년 전, 휴대폰이 보편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까운 지인들의 집 전화번호 몇 개쯤은 외우고 다녔다. 그러나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고 내장된 전화번호부를 활용하게 되자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됐다. 심지어 이제는 가족의 휴대폰 번호도 전화번호부를 뒤적여야만 하는 시대가 됐다.

 

한편 휴대폰 속 전화번호부에 수백 개의 전화번호가 있어도 일부러 전화번호부를 열어 들춰 보지 않는 이상 휴대폰 기기만 멀뚱멀뚱 본다고 해서 전화번호가 생각나지는 않는다. 문자도 마찬가지다. 성경을 기록한 문자는 단지 진리의 내용을 저장만 하고 있을 뿐이다. 문자 자체가 독자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물론 성령의 조명하심에 따라 진리의 내용을 깨우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이 깨우치게 해 주시는 것이다. 문자가 우리를 깨우치게 하는 이은 아니다. 이러한 문자의 무응답적 속성에 대해 월터 옹(Walter J. Ong)도 동일한 의견을 제시했다.





"써진 텍스트는 기본적으로 아무 것도 대답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말한 바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면, 그 부탁에 따라 당신은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에 아무리 그러한 부탁을 한다 하더라도 최초로 의문을 던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 그것도 종종 어리석은 말을 단지 되풀이할 따름이다." - 월터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월터 옹은 독자들이 더 이상 의미 추구와 해독을 않는 텍스트를 가리켜 "죽은 텍스트" 혹은 "경직되고 시각적인 응고물이 되어 버린 텍스트"라고 표현했다. 분명 맞는 말이다. 서가에 꽂힌 책이 아무리 많아도 읽히지 않고 박제해 있으면 그것은 죽은 텍스트, 죽은 책일 따름이다. 라면 냄비 받침대나 목침 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5세기에 라틴어 고전 인쇄를 촉진시켰던 히에로니모 스쿠아르시아피코는 "책이 너무 많아져서 사람들은 학문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21세기인 지금은 어떤가? 책은 과거에 비해 더욱 많아졌다. 기술의 발달로 책이 아닌 저장 매체도 다양해졌다. 과거의 텍스트 형식에서 발전한 하이퍼텍스트가 링크를 타고 손안에 들어와 있다. 이제 성경도 검색하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꽂힌 책을 읽기 위해 서가까지 손을 내뻗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성경은 손안의 스마트폰 어플 안에 항상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경은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문자를 해독하는 능력이 매체적 장벽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글을 읽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자 체계를 학습했는가 여부를 따지는 문맹률은 보편화된 교육 덕분에 분명히 낮다. 한글을 읽고 쓰는 데 지장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전문성 있는 문장과 책을 해독하는 문자 해독력은 교육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토록 인문학 열풍이 불었지만 고전 인문 서적을 그대로 읽지 못하고 해제나 교양 입문서를 거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고도의 문자 해독력은 장기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성경은 분명 전문 서적에 해당한다. 종교적 고서이고 수천 년 전의 정황을 담은 역사 기록물이다. 게다가 66권이나 되는 분량은 독자에게 한없이 부담스런 양이다. 한글이 읽힌다고 해서 성경이 제대로 읽혀지고 그 의미가 다 깨우쳐지는 게 아니다. 진리의 담지체인 성경은 우리 손안에 있지만 진리의 내용 그 자체에 다가가기까지 거쳐야 하는 장애물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일까? 한글로 써져 있지만 읽어도 의미를 깨우치기 힘든 그 과정을 빌미로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있다. 중세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읽고 깨우친 이들''읽고도 깨우치지 못한 이들' 위에 올라서 있다. 인식의 우월이 사람을 계층화하고 마는 것이다. 읽고 깨우친 이들은 깨우치지 못한 이들을 닦달한다. 부지런히 읽으라고 종용한다. 끊임없는 교육을 강조한다. 그 과정 속에서 계층화가 이루어진다. 깨우치지 못한 이들은 부지불식간에 타자화된다. 그리고 깨우치지 못한 이유를 자신의 박약한 의지에서 찾는다. 외부로부터 타자화하는 힘이 워낙 강렬하다보니 근본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게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어야 할 교회가 우월한 인식을 지닌 사람들과 주눅 들어 움츠린 사람들로 양분하고 마는 것이다. 조금이나마 진리에 가깝게 다가서고자 성경과 마주하고 진행하는 이 모든 일들이 부지중에 교회를 양분하는 것으로 왜곡되는 것이다. 성경을 읽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반복해서 마주하는 신앙생활 속에서 진리를 붙잡도록 애써야지 인식의 폭력이 일어날 빌미를 붙잡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기록되어 남겨지는 그 순간부터 문자가 성경 해석을 어렵게 하는 역할을 한다. 간극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언제든 찾아서 읽으면 된다는 편리함은 성경 속 문장 안에 감추인 진리의 내용을 도리어 멀어지게 만들었다. 선교사 손에 들려 전 세계에 보급된 성경책은 복음의 확장을 가져왔지만, 집집마다 몇 권씩 구비된 성경책은 좀처럼 찾아서 읽기 어려운 저 멀리에 간직되어 있기도 하다. 이제는 기술의 발달에 의해 손안에 성경이 있지만 여전히 성경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성경이 어느 때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지 않느냐는 말로 성경을 읽지 못하는 신앙인들을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진리에 다가서고 싶으나, 성경을 읽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그들을 타자화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반응형
LIST
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