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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업의 해체, 그리고 몰락

Scott's manager 2019. 2. 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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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 자문위원, 네트워크 허브, 그리고 그 밖에 현란한 수식어들. 모두 다 <중개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내세우는 이름표들이다. 물론 저급한 양키 말로 지칭하는 브로커도 빼놓을 수 없다관련 업계 종사자들이야 한껏 어깨에 뽕을 집어넣고 으스대며 자신의 네트워크 규모와 전문성을 훈장 삼아 명함을 들이밀겠지만, 글쎄다! 마음 같아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환의 통로로 자임하며 이윤을 뽑아먹는 이들>이라는 정도로 정의해 두고 싶다.

 

어디선가 돌 던지는 소리가 들린다만 어쩔 수 없다. 나조차도 한때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키워 컨설팅 사업을 대대적으로 해보고 싶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 <그런 분야도 컨설팅 해?>라는 대답이 튀어나올 정도로 미개척 분야라고 생각했으니, 나름대로 단꿈에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물론 지금도 많은 이들이 <매개하는 일>을 통해 이득을 취하고 또 의뢰자는 좋은 도움을 받기도 한다만, 확실히 이제는 옛날 같지 않다.

 

가장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는 부동산 중개업만 해도 그렇잖은가? 인터넷 시대가 활짝 열리고 개개인에게 다이렉트로 정보가 꽂힌 덕분에 부동산 거래조차 인터넷카페 직거래, 어플 직거래 물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옛날 사무실에 앉아 손님들을 응대하던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이젠 죄다 인터넷 시장에 좌판을 깔고 호객행위를 한다.

 


 

누군가는 공간 제약 없는 인터넷을 도구 삼아 오히려 사업이 확장됐다고 썰을 풀겠지만, 중요한 건 판 자체가 의뢰자(구매자) 중심으로 무게가 쏠렸다는 데에 있다. 본래 중개업이라는 게 거래하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수수료 떼먹고 통로 역할을 하는 일인데, 수수료 없이 직거래하는 유통경로를 앞지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은 부동산처럼 물적 거래를 기반으로 한 중개업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요하는 정보 관련 컨설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바야흐로 온갖 잡다한 생활지식에서부터 분야별 전문지식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정보가 모두에게 개방된 시대다. 물론 신뢰도 떨어지는 인터넷 정보탐색이 무슨 대수냐고 할 테지만, 정작 이윤이 들고나고 생사가 걸린 일에는 학위 없는 일반인도 한순간에 셜록홈즈로 변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지난 일을 되짚어 생각해 보라. 국정 운영이 벼랑 끝에 선 탄핵정국 당시, 네티즌 수사대들이 여의도 정치가들에게 물어다 준 정보들의 퀄리티를!

 

헌데 판이 이렇게 돌아가는 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이들이 있다. 알량한 전공 지식 앞세워서 사람들에게 접근해 <컨설팅 해 줄테니 수임료 내라>는 꼴을 심심치 않게 본다. 나도 이제 벌어먹고 사는 장년층에 접어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변변한 기술 없이 말로 벌어먹고 사는 인간들이 주변에 많아서 그런 건지, 정말 그런 인간들을 적지 않게 본다. 수사대급 정보탐색이 아니라 키워드 몇 개만 검색창에 집어넣으면 금세 관련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도, 한껏 스스로를 부풀려 전문 컨설턴트 행세를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세 부류 중 하나다. 시대가 이렇게 변한 줄 모르는 뒤처진 세대이거나, 혹은 진짜 사기꾼이거나, 또는 달리 할 일이 없어 이마저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 이렇게 셋 중 하나다.

 

그런데 진짜 골 때리는 것은, 이윤을 남기는 상거래가 목적이 아닌 고매한(?) 가치를 따라 이런 일을 하는 작자들의 경우다. 이와 같은 경우는 자본이 아니라 명예나 권력을 얻는 게 이면적인 목표다.

 

대표적으로 정치가나 종교지도자들이 그렇다. 정치가는 국민을 대표한다는 대의적 가치를 역전시켜 중개하는 힘을 근원 삼아 권력을 얻고, 종교지도자는 신(정신)과 인간을 매개한다는 중간 역할을 독점하면서 권력을 얻는다. , 정치든 종교든 일체의 정보 접근을 차단한 구조 자체가 얼마나 중간자 노릇하는 인간들에게 힘을 집중시키는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한편 여의도 정치가들뿐만 아니라 약자들을 대변한다고 하면서 정작 한데 모아진 에너지를 자신에게로 집중시키는 약아빠진 대변자들도 빼놓을 수 없다. 굳이 호랑이 같은 권력자 주변에 어슬렁거려야만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건 아니다. 셈이 빠른 인간들은 약자들의 고통과 절규가 이슈가 되어 구심력을 갖춘 에너지원이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허나 기본적으로 부르주아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고, 남성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듯이, 사안의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목소리를 내야지 그 누구도 대변의 역할을 이유로 해당 주체들이 가져야 할 힘을 갈취할 수 없다.

 

혹여 선의나 정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대변자 자신도 함께 내세우는 이들을 발견하거든 긴가민가 헷갈려 하지 말고 주저 없이 이들의 실체를 까발려야 한다. 그래야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는다.

 

다시금 말하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시공간 제약을 이유로, 정보 접근 제약을 이유로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던 시대는 이제 저물어간다. 오랫동안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던 이들이 다가와 <그쪽 분야는 내가 전문가이고, 내가 베테랑이라 잘 안다, 해당 분야의 유력한 아무개도 내가 잘 알고 있다>며 사기꾼 같은 영업 멘트를 날리거든 안 들린다는 듯 귓구멍이나 후벼 파면서 무시하자. 자꾸 누굴 대신해서 뭘 하려 드는 그런 이들에게는 중개(매개)의 접점조차 주지 않도록 처음부터 무시하는 게 최고의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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