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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다가 두 눈을 의심했다. 말 같지도 않은 헤드라인을 봤기 때문이다. 참나! 책 안 읽으면 원시인처럼 된다니... 대번에, ‘원래 애들은 원시인인데 점차 문명인이 된다는 소리인가?’ , ‘그다지 문해력이 높지 않은 옛날 어르신들은 원시인이라는 소리인가?’ 갖가지 생각들이 스쳤다.

 

헤드라인만 보고도 어떤 논조로 말할지 안 봐도 비디오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클릭해 들어가 봤다. 허나 역시나! 였다.

 


 

글의 목적은 알겠다. 요즘 사람들 책 많이 안 읽는데, 책 많이 읽자는 얘기다. 그런데 책에는 우리를 일깨우는 사상과 가치들이 담겨 있으니 좀 더 책을 열심히 보자는 근본적인 얘기가 아니라, 책 안 읽으면 원시인 된다는 게 골자였다.

 

글쓴이가 누군지 나중에 찾아보고야 알았다. 과거에 출판사를 운영하던 대표였다. 지내온 이력을 통해 이런 논조가 나오게 된 배경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긴 했다. 워낙 출판시장이 어렵다 보니 그러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책 안 읽으면 원시인이 된다라니...



 

출판계가 활용해 온 오랜 마케팅 전략은 바로 <책 읽기의 당위성> 호소다. 헌데 이런 식의 마케팅 전략은 일반적인 상품 판매 전략과 참 많이 다르다. 구매자를 심리적으로 구석에 몰아넣거나 도서 구매 빈도수가 낮은 사람들을 저품질(저사양) 인간으로 분류해 버린다.

 

책을 읽어 성찰하고 바른 실천을 하자는 게 인문적 가치의 실현인데, 완전히 거꾸로다. 동서 고전이 담고 있는 인식 폭력의 위험 고발과 타자 존중의 철학 따위는 한 방에 날아가 버린다이처럼 책 읽기의 당위성이 내포한 모순적인 일면에 대해 격월간 교육 저널 <민들레> (vol.111, 2017)에서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는데, 관련 내용을 잠시 가져와 본다.

 

“‘사람들이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 심하다, 그러니 책 좀 읽자는 당위에 우리는 늘 위축되곤 한다. 이러한 협박성 당위는 혹시 출판사와 작가, 학자 지식인 권력이 만들어낸 거짓말은 아닐까? 시장에서 출판 산업처럼 희귀한 판매 전략을 고수하는 업계는 드물다. 어떤 식당도, 특정 제품을 파는 가게도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손님들을 힐난하고 몰아세우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출판사들은 책을 읽지 않는 소비자들에게 자기 물건()을 사야 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도 지속적으로 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기한 것은 그러한 방식의 마케팅에 소비자들이 찍소리도 못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오히려 책을 읽지 않는자기 삶의 방식에 대해 반성까지 한다.”(김동환, 2017, <민들레>(vol.111), p.9)

 

이어서 김동환(2017)은 출판계가 책과 관련한 무수한 격언들을 앞세워 책을 팔고 있는데, 문제는 해당 격언에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의미만을 추려내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의 발단이 된 기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이야?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읽기의 힘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비유는 카프카의 편지글에 들어 있다. 어떤 책은 읽는 것으로도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카프카는 생각했다.“(해당 기사 서두)


서두에 등장하는 카프카의 격언은 오로지 <책 읽기의 당위성>으로만 수렴된다. 그런데 설마 카프카가 책만 숭고하고 다른 루트를 통한 사상의 가르침은 전부 쓰레기라고 했을까? 그러지 않았을 거다.

 

책에 담긴 <내용>이 중요하고 숭고한 거지, 내용을 담고 있는 <책 자체>가 숭고하거나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데 완전 거꾸로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그런 식으로 세뇌를 당한다. 때문에 책 자체가 너무도 중요하고, 책을 많이 읽는 다독 자체가 중요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다.

 

오죽하면 책 내용은 일절 모르는데, 책 읽는 외양 자체만으로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을까? <북스타그램>이라고 소셜미디에에 태그를 걸어 놓은 이미지들은 죄다 예쁘장한 책표지와 커피잔으로 가득하다. 책을 읽으려면 펼쳐야 하는데, 덮어놓은 책의 이미지만 줄창 소비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 식으로 허세 든 인간들이 책 많이 사주고, 열심히 소셜미디어에 책표지 이미지 게시해주면 돈 안 들이고 홍보까지 되니 좋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판매 부수는 좀 오를지 모르겠지만 사상과 가치의 저변확대에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앞서 언급한 김동환(2017)도 마찬가지로 책 읽기는 내용 자체와 그것을 사색하는 힘이 중요한 거지 굳이 종이책 자체를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며,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영국의 철학자이며 정치사상가인 존 로크의 말이다. 읽고, 질문에 답하고, 사색하는 독자만이 이러한 독서의 권위를 체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전에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다만 꼭 많이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꼭 종이책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김동환, 2017, <민들레>(vol.111), p.14)

 

한편 해당 기사는 <인지능력 저하>의 문제를 <산만함>과 연결지어 이야기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참 많다기본적으로 책 읽기는 시각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이다. 때문에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게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책 읽는 동작의 외양은 자동차 운전과 외양상 똑같다. 전방 주시를 하지 않으면 진행이 어렵다. 눈 감고 운전하는 일이 불가능하듯, 눈 감고 책 읽기도 불가능하다. 또는 시선을 다른 데로 흩뿌리면서 운전할 수 없듯, 책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던지면서 읽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책에 주시하는 자세 자체를 <안정된 그 무엇>으로 라벨링 해서 격상시켜 버렸다는 데에 있다. 대개 사람들은 책을 손에 붙들고 주시하는 자세만 취하고 있어도, 산만하지 않은 아이, 집중력이 있고 몰입감이 있는 아이로 추켜 세운다. 반대로 책을 펼쳤다가도 덮는 아이, 책을 보다가도 다른 데에 시선을 돌리는 아이는 산만한 아이라고 금세 낙인을 찍어 버린다.

 

사실 ADHD 증후군이라고 알려진 주의력 결핍의 문제도 어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행동 양식에 아이들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데에서 발생한 것이다. 보통 ADHD 증후군과 학습장애의 연관성을 강조하다 보니 산만함이 조금만 지나쳐도 학습장애가 있고, 주의력 결핍 장애가 있는 아이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모두 책 읽기 자체가 학습의 주된 양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여전히 문해력을 바탕으로 한 학습방식이 이 사회의 주된 학습이다 보니, 학부모들은 독서를 기반으로 한 문해력 향상이 입시 성공의 근본적인 열쇠라고 여길 수밖에 없고, 주의력 결핍과 학습장애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포털사이트 검색을 해도 이제는 어른들처럼 <텍스트 입력 검색>이 아니라 <음성 검색>을 하고, <텍스트 정보 검색>이 아니라 <영상 정보 검색>을 하는 아이들을 굳이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모자란 아이로 취급해야 할까?

일자무식이 한이라 자식 교육만큼은 논 팔고 밭 팔아 해냈던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에 글자깨나 읽고 유식이 넘치는 자식을 볼 때 세대가 다르구나느끼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텍스트 중심의 기성세대와 다른 세대다. 이들은 디지털 시대가 열린 이후에 나고 자란 <디지털 원주민>이다.

 

사회가 커다란 전환기에 놓이면 불안부터 엄습하는 건 당연지사다. 사실 그토록 숭상해 마지않는 문자의 발명 시기에도 그랬다. 글자가 발명됐다고 얼마나 많은 철학자가 불안에 떨었는지 모른다. 글자 때문에 이젠 사람들이 기억에 의존하지 않을 거라고, 글자로 써놓고 돌아보지 않고 내팽개치는 일이 많아질 거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그 시절 철학자들의 눈은 정확했다. 우리들의 책장에 꼽힌 수많은 책을 보라. 읽지도 않고 꼽힌 책들은 진열의 용도 그 이상 해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책을 본다. 그리고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까지 주된 학습의 매개체였던 구술의 방식도 병행하고 있다.

 

책보다 영상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시대에 접어든 것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극화되어 책이 미래사회에서 영영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불안에 휩싸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책은 분명 영상과는 다른 그것만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고, 텍스트가 가진 장점도 있다. 이를테면, 하룻밤이 지나 통이 트는 시간의 묘사만 해도 영상은 제 아무리 축약해야 타임랩스로 보여주는 것이지만, 텍스트로는 별이 지고 동이 텄다와 같은 식으로 미적인 언어축약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니 텍스트의 장점을 스스로 뭉개버리는 디지털 영상 시대에 대한 혐오와 불안은 되도록 접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도리어 책이든 영상이든, 좀 더 다양한 매체 생태계 안에서 정보를 수집하여 처리할 수 있는 사회에 진입한 게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하지 않나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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