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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울미술관에 평소 관심 있던 작가들의 기획전이 열린다 해서 오랜만에 들렀다. 공식 전시명은 <한국 근현대 명화전: 꽃나무는 심어 놓고>인데, 대중들 귀에도 익숙한 근대 작가들을 중심으로 했다. 천경자,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 걸출한 이름들을 내걸고 근대에 초점을 맞춘 이번 전시는 올해가 3.1운동/임시정부 100주년의 해라는 점에 착안해 준비한 기획전이다.

 

 

구체적인 기획 의도는 다음과 같다.

 

“<근대의 꿈: 꽃나무는 심어 놓고>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근현대 시기 제작된 주요 작품을 통하여 근대화가 초래한 우리 삶과 인식의 변화, 그리고 근대적 시각성의 확장을 살펴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이태준의 소설 <꽃나무는 심어 놓고>에서 차용한 전시명에서 드러나듯, 꽃나무는 근대성을 지칭할 수도, 근대화를 위해 우리가 두고 온 어떤 것을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이 드러내는 현실은 엄혹하고 냉혹할 수도 있으며, 풍성하고 화려할 수도 있고, 때로는 그리움으로 또 때로는 좌절을 보듬어 안고 돌이켜 생각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1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우리의 근대가 안고 있는 내재적인 모순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일구어낸 변화들은 지금 여기의 우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근대기 작가들의 꿈과 도전을 통하여 그것이 갖는 현재의 실천적 의미를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1.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우선 메인 포스터 이미지로 자리한 천경자 작가의 작품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실제로 보니 사이즈가 큰 그림은 아니었다.

 

 

관람객들이 붐비던 때라 머물러 감상하진 못하고 집에 돌아와 해설을 찾아보니, 50대의 작가가 22살 당시 고된 삶을 회상하며 그린 자화상이라 한다. 스물 두 살, 작가는 홀로 아이를 낳았고 단칸방에서 그 시절을 견뎠다. 비록 전문적인 안목은 없지만 프리다 칼로의 작품처럼 짙은 색감의 강렬한 에너지가 어디서부터 오는가 싶었는데, 작가의 삶을 전해 듣는 순간 단번에 수긍이 갔다.

 

그러나 삶의 질곡을 가늠하며 넘겨짚는 내 생각은 경솔했다. 천 작가는 애환의 저장고쯤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적극적인 생의 표현을 했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에 담긴 뱀은 전작들부터 그녀를 상징하는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사회 통념상 가부장적 인식이 심했을 당시, 그녀는 속칭 뱀을 그리는 여자로 통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대중들이 넘겨짚는 대로 아픔의 극복 차원에서 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인생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라고 했다.

 

 

꽤 오랫동안 친분이 있었던 박경리 작가는 천 작가를 소재로 시를 남기기도 했는데, 오랜 세월 피부로 느낀 바들을 세밀하고 직접적으로 담아 냈다.

 

 

<천경자> - 박경리

 

화가 천경자는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 할 수도 없다

 

매일 만나다시피 했던

명동 시절이나 이십년 넘게

만나지 못하는 지금이나

거리는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대담한 의상 걸친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허기도 탐욕도 아닌

원색을 느낀다

 

어딘지 나른해 뵈지만

분명하지 않을 때는 없었고

 

그의 언어를

시적이라 한다면

속된 표현 아찔하게 감각적이다

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 들쑥날쑥

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세월의 찬바람은

더욱 매웠을 것이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이다

 

 

그래서일까? 각막을 공격적으로 자극하는 색감이 마음에 짙은 무게로 와 닿아 내린다. 포스팅을 위해 글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에너지를 뺏긴 채 상념에 잠긴다.

 

한편 천 작가와 관련해 세간이 떠들썩했었다는 기억이 나서 자료를 뒤적여 보니, 젊은 날뿐 아니라 노년에도 꽤 굴곡이 많았다. 다름 아닌 위작 논란이 그것인데, 항간에는 정치적인 이슈와 결부되어 이용당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천 작가의 홈페이지를 아래에 링크해 둔다. 위작 논란 혹은 천 작가의 그 외 작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 천경자 작가 홈페이지 링크 -

https://chunkyungja.org/

 

 

 

 

2. 박노수 작가 그리고 이민정

 

며칠 전 서촌 나들이를 하다 <박노수미술관>에 들렀다. 사무실이 부암동에 있으면서도 정작 주변을 둘러보질 않아 서촌이 바로 코앞인 것도 몰랐다. 이번에야 비로소 맘먹고 둘러 보았다. 솔직히 한국미술사는 훑어본 적이 없어 문외한인데, 아내의 검색과 추천으로 찾게 됐다. 그렇게 방문한 <박노수미술관>은 그가 작고하기 직전까지 생활한 가옥을 활용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박노수미술관>을 다녀온 날 인터넷을 뒤지다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평소 관심 있던 사람들과 전공자들에게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일 테지만, 박노수 작가가 바로 배우 이민정의 외할아버지라 한다. 나는 어찌나 놀랬는지 아내를 불러 여보, 아까 그 화가가 이민정 외할아버지래!”라고 하면서 외쳤다.

 

여하튼 그의 가옥 다락방에서 보았던 영상 속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그림이다. 영상을 보면서도 아내가 입은 옷은 고풍스러운데, 표정이랑 자세는 참 고고하고 도도해 보이기까지 하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이는 박노수 작가가 1955년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이다. 일설에 당시 국전 초기(1-10)엔 인물화를 그려야 대통령상을 받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0회 동안 6번이 인물화였는데, 4회 국전 박노수의 수상 이후, 6, 7회 모두 <선소운>과 같은 좌상 인물화가 대통령상을 받았다.

 

한편 <선소운>에 얽힌 위 이야기들은 전부 집에서 뒤적거리다 알게 된 것들이라, 한 번 더 직접 눈으로 보며 음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뭐랄까, 기왕이면 코앞 근거리에서부터 점차 원거리로 멀어지면서 차분히 느껴보고픈...

 

 

 

 

3. 반가워요! 장욱진 작가님

 

경기도 양주에서 일 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였다. 장욱진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게... 양주시 장흥에 위치한 장욱진 미술관은 그 이후 우리 가족이 종종 찾는 핫스팟이 됐다. 아내의 첫째 아이 만삭 사진도 장욱진 미술관에서 찍었다.

 

그런데 이번 <근현대 명화전> 작품들 가운데에서 장욱진 작가의 그림을 발견하니 반가움이 더했다.

 

 

관람객 한 분이 이 작품 앞에서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계속 날리신다. 아마 당혹스러우시겠지. ‘저렇게 사람 그리는 거는 아무나 할 텐데라고 속으로 생각하시면서 말이다. 나도 여전히 그런 생각이 드니까 당연한 일이다.

 

 

 

4. <한국 근현대 명화전> (전시 안내)

 

- 전시 기간 : 9/15까지

- 전시 장소 :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 관람 시간 : 10:00-20:00(평일) / 10:00-19:00(,,공휴일)

- 관람 비용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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