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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아수라장이다. 신천지로 대구 경북이 비상이 걸리더니 이젠 교회들이 말썽이다.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모이지 말라고 해도 모이는 교회들이 있더니 이젠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가 예배 자제하라고 해서 코로나가 들어왔다나 뭐라나? 정말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근데 이렇게 교회들이 막 나간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했다. 사실 코로나 이슈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교회들이 입에 거품 물고 외치던 게 <혐오>조장 그리고 <차별>조장 아니었나? 차별금지법 반대한다고 각 지자체 흔들어 놓고, 인권 논의 자체를 색깔론으로 뒤집어씌우는 데에 앞장선 것도 교회였다.

 

도대체 차별하지 않고 사람 존중하며 지내자는데 왜 그리 반발일까? 주구장창 끝까지 동성애 이슈만 물고 늘어지면서 매번 했던 소리가 자기들이 말하는 이웃사랑에 있어 동성애는 민감한 이슈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동성애자는 이웃으로서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죄라나 뭐라나! 웃기는 건 동성 간 성폭력을 꼭 예로 든다는 거다. 근데 그거 아나?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성폭력은 악질이다.

 

제주도 예멘 난민 이슈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슬람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이슬람=테러>라고 몰아세우면서 시민들을 불안 속으로 떠미는 데 앞장 섰던 건 다름 아닌 교회였다. 근데 지금 상황은? 도리어 <교회=코로나테러>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동성애 이슈도 그렇고 난민 이슈도 그렇고 죄다 자기들 잣대로 판단하면서 혐오와 차별의 바이러스를 퍼뜨렸던 교회들이, 이제는 진짜 바이러스를 온 나라에 퍼뜨리고 있다.

 

1. 바이러스 확산의 바탕, 우격다짐 기독교 종교관

<혐오 차별 바이러스> 퍼뜨릴 때도 그렇고 오프라인 예배 강행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퍼뜨리는 지금도 그렇고 공통점이 뭔 줄 아나? 그놈의 알량한 자기네 <기독교 종교관>에 바탕 해서 매번 판단하느라 어쩔 수 없다는 거다. 자기네 기독교 종교관에 따르면 동성애는 죄니까 어쩔 수 없다. 이슬람은 근본주의 테러 종교라 어쩔 수 없다. 이번에 코로나 터지고 오프라인 예배도 주일예배는 꼭 모여서 드려야 한다. 이래서 이 마당까지 온 거다. 자기네 종교관에 따르면 그렇다는 말은 알겠는데, 그렇게 극단적으로 누군가 남을 배척하고 헐뜯고 피해를 주면서까지 그렇게 신앙을 지켜야 하나 싶다. 진짜 너무 우격다짐이다.

 

근데 기독교 종교관이 바탕에 삼고 있는 <성경>의 정신은 그게 아니더라.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게 중심이라더라. 근데 가만 보면 하나님 열심히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이웃 사랑은 빵점이다. 그게 그들의 문제다. 본인들은 모른다. 언뜻 보면 자폐성이 강한 종교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순수한 기독교 정신은 외골수 배타성이 목표도 아니고 자폐성이 핵심도 아니라는 거다. 모두 다 그 잘난 신도들이 기독교 정신을 망가뜨리고 왜곡시킨 게 아닌가 싶다.

 

2. 왜 <온라인 예배>로 <가정 예배>로 전환을 못하나?

현 상황에서 계속 지적하는 것은 시민들이 교회더러 무조건 예배드리지 말라는 게 아니라는 거다. 자기들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백번 존중해서 예배드리되, 현장 오프라인 말고 온라인으로 하거나 각자 집에서 드리라는 거다. 그래서 다수의 교회들이 이에 따라 온라인 예배나 가정 예배로 전환한 걸로 알고 있다. 때문에 모든 교회들을 싸잡아 도매금으로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계속 사건이 터져 나오는 대로 여전히 오프라인 현장 예배를 고수하는 교회들이 있다. 2월 한 달 동안 어찌어찌 신천지 이슈로 잘 넘어갔다고 치더라도, 3월 들어서 계속 여러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마당인데, 좀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할 순 없나 싶다. 상황이 이쯤 되면 이러다가 남들한테 정말 심각한 피해를 주게 생겼구나!’ 이런 주변머리가 돌아가야 정상이라는 거다. 근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은 당최 그럴 생각이 없는 교회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오죽하면 교회 목사들 찾아가서 왜 중소형 교회들은 여전히 현장 오프라인 예배를 고수하냐고 인터뷰하는 기사가 났던데, 아주 가관이었다.

첫째는 주일예배는 반드시 모여야 한다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란다. 아니, 아까 말한 대로 그 잘난 신앙 지키는 건 좋은데 이웃사랑 실천도 제대로 못하면서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그런 신앙을 왜 꼭 지금 이 마당에 지키려고 아득바득 우기냐는 거다. 자기들의 종교관이 서로 충돌하고 모순을 일으키는 상황인 걸 직시하지 못하는거다.

둘째로 온라인 예배 환경을 구축할만한 형편이 안된다고 변명을 늘어놨다. 이건 정말 불성실하고 게으른 게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변명이 얼마나 구차하냐면,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을 하고 싶어도 구독자 1,000명이 안 되어서 송출 조건이 안 된다는 거였다. 정말 화가 났다.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송출 조건에 구독자 1,000명을 충족해야 한다는 거는 모바일 촬영일 경우에 한해서다. 모바일 촬영이 아니라면 제한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을 돕는 어플들도 있어서 조금만 웹 서칭을 하면 모바일 실시간 스트리밍도 할 수 있다. 찾아보니 코로나 사태로 교회들도 난리가 나서 기독교 관련 서칭을 하다보니 작은교회에서도 할 수 있는 온라인 예배 시스템 구축 설명이 정말 잘 나와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라는거다.

 

아니면 정말 아니면 꼭 실시간 스트리밍이어야 하나? 녹화 떠서 파일 업로드 해도 된다. 아니면 진짜 그냥 가정 예배로 각자 알아서 드리라고 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잘난 하나님이 이렇게 불성실한 교회의 종들을 보며 좋다고 할까 싶다. 그것도 하나님이 천하보다 아끼신다고 하는 다른 사람 생명을 담보 잡아서 말이지. 정말 혀를 찰 노릇이다.

셋째로 신도 수가 많지 않은 중소형 교회들은 오프라인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교회 운영이 어렵다고 변명을 늘어놨다. 정말 웃기는 얘기다. 교회도 결국 돈이구나 이런 이야기는 삼가도록 하겠다. 그러나 이런 변명을 정말 들어주기 힘든 이유는, 당신들의 교회에 나오는 신도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두 달 가까이 타격을 입어서 자영업자는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월급쟁이는 봉급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처지인데, 교회 운영이 어려워질 걸 걱정한다는 게 진짜 웃긴다.

 

기본적으로 신도들을 함께 가는 동반자로 여기는 게 아니라 운영 자금을 대주는 봉으로 봤다는 거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손사레를 칠지 모르겠으나 논리상 여실히 드러났다. 숭고한 종교성이니 뭐니해도 결국 속물 근성 장사치가 팔아먹는 상품 정도로 전락시킨 꼴이다. 이쯤 되면 하늘에서 하나님이 땅을 치고 곡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당장 벼락을 내려서 정의로운 심판을 하던가.

 

3. 근본적인 문제는 <예배에 대한 모순적인 이해>

무엇보다 웃기는 거는 그들이 말하는 <주일예배의 당위성>이라는 게 성경에 비춰 봤을 때 모순성이 심하다는 거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기독교 종교의 핵심으로 삼는 예수는 코로나 사태와 거의 흡사하게 비견할 수 있는 <안식일 논쟁> 사건에서 과감하게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는 거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엿 먹일 작정으로 예수가 과연 안식일을 지키라는 규정을 잘 지키는지, 아니면 안식일을 어기면서까지 병자를 고치는 일을 할 건지 함정을 파놓고 들이댔었다. 그런데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 사람 생명 구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며 보란 듯이 병자를 고쳤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기독교의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라고 꼬투리를 잡을지도 모르겠는데, 어찌 되었든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행동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예수는 그 잘난 종교 형식 고수하느라 사람 생명 잃게 놔두지 말고 도우라는 거였다.

그런데 작금은 상황은 어떠한가? 대구 경북 지역 수도권 집단 감염 지역의 의료시설로 달려가서 환자들을 돌보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단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도치 않은 감염으로 감염원이 되지 않도록 활동을 자제하고 모이지 말라는 작은 이웃사랑의 실천이 그토록 단칼에 내버려져야 할 일인지 심각하게 의문이 든다. 예수의 가르침일지라도 스킵하고 넘기는 게 그들의 종교관이 아닌 이상 절대 그럴 수 없다.

더구나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예배라는 행위를 눈에 보이는 어떠한 장소의 개념으로 더 이상 바라보지 말라고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에서 예수는 남왕국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말고, 북왕국 사마리아 성전에서도 말고,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에 대해 의미를 환기한 바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특정 장소에 국한한 예배가 있어 왔지만, 더 이상 장소적 개념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가? 장소를 초월한 예배의 개념을 설파한 예수의 가르침을 스스로 단번에 날려버린다. 어쨌든 무조건 일요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이 맞다고 주장한다. 심각한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종교에서 추앙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한 방에 날려버리면서,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고 난리를 친다. 이쯤 되면 모순적 종교 행위로 인한 분열 증상이 오는 게 아닌가 싶다.

 

4. <만인 사제직>을 가로막는 <성직자 중심주의>

한편 이들 교회가 도통 예배를 교회에 나와서 드려야만 하는 것으로 고수하고, <가정 예배>로 돌리지 못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자기모순이 있다. 바로 <성직자 중심주의>. 세계사적으로 굵직한 사건이었던 중세의 종교개혁은 구교인 가톨릭에서 신교인 프로테스탄트로 넘어오면서 내용적인 면에서도 많은 전환을 요구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성직자 중심주의를 탈피한 <만인사제직>이었는데...

하지만 실상은? 가톨릭의 사제 중심주의와 양상은 다르지만, <개신교의 목사 중심주의>는 고스란히 교회 내부에 자리했다. 성직자-비성직자의 구분과 차별이 신앙의 관념 안에서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치환되어 그대로 남았다. 예배 집례는 목사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종교개혁 가치에 기반한 그들의 역사적 토대에 따르면 평신도 공동체로 목사 없이 예배를 드려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개혁의 내용적인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만인사제직>에 대한 이야기를 일반 평신도들은 잘 모른다. 그냥 무조건 목사를 잘 따라야만 하는 것으로, 예배는 목사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보 편향이 심하다는 이야기다. 목사가 자기 위주로 돌아가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평신도들의 권리와 권한을 알려주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판치는 이 시국에 어느 평신도가 목사 면전에 대고 우리가 각자 집에서 예배드리겠으니 목사님은 걱정 말라고 제안할 수 있겠나? 감히 목사님께 건의나 제안이라는 건 할 수도 없고, 오직 충직한 마음으로 섬겨야 할 대상으로 여겨질 따름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평신도 공동체의 가치를 구현하며 지내고 있는 교회들이 또 없는 것도 아니다. 매스컴에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목사 중심주의를 탈피해서 평신도 공동체를 지향하고, 신도들 스스로가 힘을 합쳐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도 여럿 있다.

 

5. 신도들도 함께 공모하며 키운 바벨탑 교회들

앞서 <목사 중심주의>를 비판했지만, 목사들만의 문제는 또 아닌 것이, 신도들이 함께 공모한 까닭에 이처럼 비극적인 상황에 이르게 된 면도 있다. 우리나라 교회들의 교세는 순위를 다툴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데, 이게 일종의 대중 정치와도 비슷한 면이 있어서 다수의 기대감을 반영하고 욕망을 순화시켜서 담아내면 교세의 확장이 보장되는 측면이 있었다. 소위 7-80년대 경제 중흥기 시절 자본의 증식과 번영 그리고 기복을 기독교의 내면으로 체화시키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는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비판하는 바벨탑 교회들이다. 하나님 사랑을 말하면서 교회 조직 확장에 열을 올리는 메가처치이고, 부유한 신도들을 감싸기 위해 이웃사랑의 실천을 모른 척하는 폐쇄 집단이다.

 

그런데 이렇게 몰려든 신도들은 얄팍한 신학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적 조직장악력을 가진 목사들에 길들여지면서 비-신학적인 가치들에 동조하는 동조자로 양산됐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이웃 사랑의 가치><평신도 만인사제직>에 대한 이해, <예배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 자체가 탑재되지 않은 신도들로 말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만, -기독교적인 가치들을 체화시키면서 교회를 다니는 신도들이 태반이었다는 소리다.

때문에 지금처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난리를 쳐도 열일 제쳐 놓고 예배드린다고 교회로 모이는 신자들이 있는 거다. 아무리 연일 뉴스에서 사회적으로 교회가 비난의 화살을 맞아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인들 스스로가 망할 교회들의 왜곡된 가치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핍박받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6. 사회 속에서 공존하는 교회다운 교회는 없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건 아니다. 백화점처럼 교회조직을 운영하기를 서슴지 않는 교회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세력을 확장하지 않고 제한하며, 힘을 분산시키며, 대사회적인 참여를 꾸준히 하는 교회들도 많이 있다.

 

태극기 부대에 참여하는 교회 되기를 거절하고, 스스로 사회적 약자를 찾아가 알게 모르게 이웃을 섬기는 교회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강단에서 망언을 쏟아냈던 교회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진척이 없는 참사 규명에 수년이 지나도록 같은 마음으로 동행하는 교회들이 있다.

 

그리고 동성애자는 사랑해야 할 이웃이긴 하지만, 동성애는 분명히 죄라고 선을 그으며 차별금지법 반대에 핏대 세우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이들을 품고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를 꾸린 이들도 있다. 아울러 난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 대신에 성경의 역사 또한 난민의 역사였으며 우리 민족도 과거 난민이었음을 고백하며 환대하는 교회들도 있다.

이들 교회들은 현재 코로나 이슈 상황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대사회적으로 매우 상식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기꺼이 스스로 현장 오프라인 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 예배와 가정 예배로 전환하였으며, 이에 더하여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위해 마스크와 방호복을 전달하고, 식료품과 생필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거점으로 몰상식한 교회들이 거론되는 점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움을 자기 몫으로 감당하며 탄식하기도 했는데, ‘이 시대 최악의 이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자문하며 성찰하기도 했다.

 

7. 그럼에도 몰상식한 교회들을 어찌하나?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일부 몰지각한 교회들의 우격다짐식 예배 강행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미 한 달 넘게 강제가 아니라 권고사항으로 정부 및 지자체에서 요청한 결과가 이 모양이니, 협조하지 않은 데에 따른 피해와 결과에 대해서는 해당 교회와 관련자들에게 강하게 책임을 지우는 본보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즉 종교 자유에 대한 박해가 아니라 저들 스스로가 협조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론을 두각시켜 강한 행정력과 공권력을 행사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할 수 없는 성역화된 곳인 양 이들 교회들에 대한 대응을 주저했다가는 방역 체계상으로도 그렇고 시민들에게도 직접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힐 것으로 보인다.

 

8. 에필로그

코로나 이슈로 불거진 몰상식한 교회들에 대한 분통한 마음을 쏟아내긴 했지만, 이들 교회들이 순수한 기독교 신앙과 정신에 입각한 교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성경이 증언하는 기본적인 기독교 정신은 저렇게 천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게 기독교의 기본 가치와 무관하듯, 지금처럼 교회라는 집단이 실제 바이러스의 감염원이 되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게 기독교의 입장에서 결코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리라 여긴다. 바라기는 저들의 신앙의 본질적인 가치대로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염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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