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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와 주체들>

Scott's manager 2020. 4. 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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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사회와 주체들>

 

민주주의의 취약점은 개별 주체의 양심과 판단에 모자람 없이, 이들 구성원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전제 그 자체에 있다. 그러나 현실 속 개별 주체들은 판단의 역량 편차도 심할 뿐 아니라 사회적 의사결정에도 그리 잘 훈련된 편이 아니다.

, 이들 주체가 동시대를 지나며 반복적으로 사회적 학습을 한 경우는 다르다. 지난 판단의 실책으로부터 반면교사 하는 가운데 주체의 역량은 커진다. 이를테면 능동적으로 정보를 비교하고 선별하며, 사회적 논의에 따르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며 주체는 변화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벌어진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과 탄핵 등과 같이 굵직한 이슈들은 80년대 민주화 항쟁 이후 다시금 마주한 사회적 학습 환경인 셈이다.

문제는 학습 효과가 얼마나 오랫동안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인데, 다행히 같은 학습 효과는 아닐지라도 세대를 지나며 마주하는 사회적 이슈들과 이로 인해 조성되는 사회적 학습 환경은 여전해 보인다. 탄핵 정국 이후로도 미투 운동으로 촉발한 페미니즘 담론의 확산은 성차별, 성폭력, 고정된 성 역할 등에 대한 사회적 학습을 견인했다.

여기에는 사회적 기폭제 역할을 담당한 소셜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문제의식의 사회적 공론화와 논의의 진척이 상당 부분 이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국회나 혹은 메이저 언론 상에서나 격돌할 설전이 온라인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따지고 보면 보수층의 유튜브 집결도 격전지가 온라인으로 번져 전선이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큰 폐해를 끼치고 있는 가짜뉴스의 범람도 근본적으로 언론의 구조적 딜레마에서 오는 문제이긴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과거 국회에서의 고성방가, 날치기 통과, 메이저 언론의 정보 왜곡의 확장판이다.

 

2. <공론장의 소란에 익숙해지기>

 

코로나이슈와 ‘N번방이슈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하나는 안전에 대한 이슈고, 다른 하나는 폭력에 대한 이슈다. 하나는 정파성에 따라 의견이 갈렸고, 다른 하나는 처벌의 수위만 다를 뿐 대체로 목소리를 같이 한다.

민주적 공론장이라는 게 이렇듯 의견이 합치될 때도 있지만 대립각을 세울 때도 있다. 특히 조국 대전에서 보인 광장의 이원화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하여 민주적 체제 자체를 갈등의 씨앗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를 방지하고자 목소리 자체를 삭제하는 방식은 역사를 통해 학습했듯이 더 큰 폐해를 낳는다. 독재와 파시즘이라는 통제에 대한 반작용은 유혈을 대가로 요구했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장은 마찰음이 일게 마련이다. 일상에도 백색소음이 있듯 공론장에도 일종의 백색소음이 따른다. 물론 소란이 좀처럼 익숙하지 않고 피로감으로만 다가오는 이들은 무심한 개인으로 남기를 자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이 키워 온 백태를 우리는 최근 몇 년 사이 직접 보았다. 사회와 무관한 개인은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을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체득했다. 공론장은 공존 사회의 필요조건임을 학습한 것이다.

 

3. <보다 나은 공론장을 위하여>

 

그렇다고 공론장의 소란이 피로감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무작정 간과할 수만은 없다. 당최 듣지는 않고 제 말만 쏟아놓는 장은 공론장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불편하더라도 듣는 수고가 따르지 않으면 시장통일 따름이다. 그러나 자기와 다른 신념이 들어찬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어려움을 가볍다고 할 수도 없다. 이데올로기 분쟁사가 보여주듯 관점의 충돌은 생각보다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상흔이 번지지 않으려면 공론장에 대한 이해를 느슨하게 가져야만 한다. 공론장을 논쟁의 결론이 나는 결전의 장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저 공론장은 감춰지거나 소외된 목소리는 혹시 없는지 살피는 장이면 된다. 다양한 목소리가 일단 나오면 자연스레 의견은 서로 섞이게 마련이다. 다른 목소리들을 밀쳐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려는 과한 의지가 공론장을 오염시킨다.

독재와 파시즘이 처음부터 사회를 파탄에 빠뜨린 게 아니다. 권력에의 의지가 다른 목소리들을 소거했을 때 문제가 됐다. 이는 답을 찾는 학습 방법에 길들어진 우리에게 상당히 낯선 과제일 수 있다. 민주적 공론장이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아우르는 학습이 필요하다. 효율적인 해답 찾기가 아니라 수고로운 의견 교류의 가치를 함양해야 한다. 그래야 공론장을 오염시키지 않는 민주적 주체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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