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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피로감마저 드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행사.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장치로써 의미화 하는 건 좋지만, '100'이라는 숫자에 너무나도 연연한 나머지 소문난 잔치집 취급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100주년 행사들엔 조금 거리를 두고 있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 우리 동네 <중랑아트센터>에서도 이번에 100주년 기념 기획을 선보였다. 평소 마트에서 장본 뒤 혹은 동네 산책 다닐 때 매번 바뀌는 전시를 빼놓지 않고 관람하는 편이었으나, 이번 100주년 기획전엔 그닥 발걸음이 잘 떼지지 않았다. 다름아니라 앞서 언급한대로 '100'이라는 숫자에 몰두한 이벤트 하나가 또 지나는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서 조금은 일부러 피하 듯 지내다가 아이와 주말 나들이로 할꺼리가 마땅찮아지자 결국 <중랑아트센터>로 향해 기획전을 관람했는데, 제법 100주년 기획전을 신경써서 준비한 티가 많이 났다. 그래서 마음 속 한 켠에 뾰족히 세웠던 신경을 잠시 거두고 누그러진 마음으로 찬찬히 둘러보았다.

일단 모든 전시실을 통틀어 가장 내 눈을 끌었던 것부터 담아보자면,

2009년에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복원하면서 발견한 태극기로, 191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단다. 구파발 지역에서 잠시 일을 한 적이 있어서 당시 <진관사>라는 사찰이 인근에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역사적인 사찰인 줄 알았으면 일부러라도 한 번 걸음해 둘러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튼 우리 아이는 저 태극기 앞에 준비된 참여 테이블에서 태극기 그리기를 한다고 자리를 잡았는데, 정작 나는 저 태극기 앞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뭐랄까, 속에서 묵직한 게 자꾸 얼굴을 지나 눈두덩으로 치받아 오르는 데 말로 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수없이 오갔다. 

이거는 우리 아이가 내가 멍 때리는 사이에 혼자 그린건데, 제법 태극기 모양을 갖춰 그린다. 참고로 바탕에 밑그림이 있기는 한데, 네 살짜리가 칠한 거 치고는 잘한 듯 싶다.

그리고 이건 다른 친구들이 태극기를 그린건데, 이렇게 한쪽 벽면에 한 데 모아 게시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이 참여하는 테이블에 이렇게 스탬프 활동도 할 수 있게끔 해 놓았는데, 너무 인상적이었다. 저 묵직함 묻어나는 면면들을 엽서에 스탬프에 담아낼 수 있다니...

아이들이 역사 교육 활동을 겸할 수 있도록 <체험 활동지>도 <중랑아트센터>에서 만들어 놓았는데, 참여자의 활동을 고려한 준비가 참 돋보인다. 

이번 전시는 <망우리공원의 애국지사>라는 타이틀로 기획됐는데, 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살려 100주년을 기념했다. 다음은 리플렛에 담긴 전시 기획 의도다.

"망우리공원에는 20세기 전반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분단 등 근대의 격동기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역사를 몸소 체험한 60여명의 위인들이 안장되어 있다. 잃어버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몸 바쳐 싸운 애국지사를 비롯하여 문화, 예술인, 의사, 정치인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민족지성인들의 무덤이 이곳에 쓰였다. 이번 특별기획전 <망우리공원의 애국지사>는 망우리공원의 역사적 가치와 이곳에 영면해 있는 애국지사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 속에 녹아있는 우리 민족의 아픔과 희망을 공유, 공감하고자 기획되었다."   

그리고 메인 전시실에 저렇게 실루엣처럼 나부끼는 얼굴들... 마치 그들의 넋이 앞에 와서 "그런데 너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 묻는 것만 같았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

 

안창호의 묘는 사실 1973년에 도산공원으로 이장했고, 망우리공원에는 묘터만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안창호가 서거 전 그가 아끼던 유상규의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겨 유상규의 묘가 있는 망우리공원에 안장되었던 것이라 한다.   

전시실 한 켠에는 안창호의 건국공로훈장증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1962년 윤보선 대통령 당시의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건 안창호의 수형기록표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수척하게 야위어가는 그의 모습이 눈에 띤다. 참고로 안창호의 독립운동을 교육운동쯤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아 덧붙이자면, 그의 운동의 폭은 훨씬 전방위적이었다. 신민회 조직과 임시정부 조직 모두 그와 관련되어 있었고, 함석헌을 있게 한 유영모, 또 유영모를 있게 한 이승훈에게는 바로 안창호가 있었다. 때문에 씨알사상연구소장이기도 한 박재순 소장은 함석헌과 유영모뿐만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 안창호까지도 씨알의 사상 실천을 몸소 행한 인물로 꼽기도 한다. 즉, 관념이나 이론에 치우친 교육 계몽이 주가 아니라 체화한 삶의 실천이 그의 참뜻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안창호는 '뇌수'라는 말을 즐겨 썼는데, "대한제국의 정신을 개개인의 뇌수 속에 관철합시다"(국권회복가)와 같이 표현하여, 관념적이거나 감상적인 것이 아닌 체화된 절실함을 내비치곤 했다.

한편 이번 <망우리공원의 애국지사> 기획에 유관순도 함께 다뤄졌는데, 이 동네 토박이인 나도 '망우리공원에 유관순 묘가 있었나?' 하는 궁금증이 생겨 찾아보니, 정확하게는 이태원공동묘지에 있던 무연고자 묘지들을 망우리로 이장하여 합장했는데, 그 가운데 유관순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찾을 수는 없으나 합동 이장한 그 어딘가에 유관순의 유해도 있지 않겠냐는 것인데... 그녀가 감내한 삶을 생각할 때 참으로 가슴 시린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체로 유관순의 행적을 기억할 때 그녀의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과 그녀가 받은 모진 고문을 거론하는데, 수감 중이던 당시 일화를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함께 수감 중인 사람 중에 젖먹이 엄마도 함께 있었는데, 엄동설한에 아이 기저귀를 빨아도 금세 얼어붙어 아이한테 기저귀를 채울 수 없자, 유관순이 이리 내보라며 기저귀를 자기 허리춤에 차고 녹으면 그제서야 이제 기저귀 채우라며 건네곤 했다 전한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항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막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망우리공원에 안장된 인물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한용운은 독립운동과 문인활동뿐만 아니라 불교대중화와 불교개혁에도 힘썼던 모양이다. 위에 실린 <조선불교유신론>이 그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내가 불교신자가 아니라서 대략 어떤 관점에서 목소리를 냈던 건지는 나중에 스님들을 만나게 되면 한 번 여쭤봐야겠다. 

 

- 전시 안내 -

일시: 2019. 9.5 ~ 10.31

장소: 중랑아트센터 (상봉 홈플러스에 주차)

휴관: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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