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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영화<조커>가 드디어 대중 앞에 본격적으로 선을 보였다. 개봉일과 관련해서도 에피소드가 있는데, 한국에선 102일에 개봉했지만, 북미에선 104일이 개봉일이다. 이유는 미국에서 매년 10월 첫째 주 금요일을 세계 미소의 날(World Smile Day)’로 기념하는데, 조커라는 캐릭터에 담긴 웃음코드에 착안해 개봉일을 104일로 정했다고 한다. 물론 이 자체가 관객 동원에 이바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긴 어렵다. 하지만 영화 외적으로 캐릭터 이미지 구축 면에서는 나름대로 의미를 불어넣었다고 볼 순 있다.

 

1. 우려를 뛰어넘은 기대감, <티저 예고편>의 성공

조커 하면 단연 먼저 떠오르는 건 히스 레저. 벌써 11년 전이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로 열연했던 일도, 그가 우리 품을 떠난 일도, 모두 2008년의 일이다. 영화 속 열연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보다 큰 충격은 히스 레저 그의 죽음이었다. 사망 이유에도 여러 설이 있었다. 히스 레저가 조커 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우울증을 앓다 유명을 달리했다는 이야기는 그 중 대표적인 설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사인은 약물로 인한 사망이라 전한다.

여하튼 놀란 감독이 연출한 <배트맨 트릴로지>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었던 캐릭터는 역시 조커였다. 영혼과 맞바꾼듯한 히스 레저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때문에 이후 조커 역을 맡는 이는 엄청난 부담을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자레드 레토가 조커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기도 했지만, DCEU(DC Extended Universe)의 조악한 연출력은 모든 걸 블랙홀로 집어넣기에 충분했다.

히스 레저가 넘사벽으로 구축한 조커 캐릭터의 아성을 비롯해, 매번 MCU(Marvel Cinematic Universe)와의 비교 선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 속에서 조커 단독 영화라니. 이처럼 누가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냐는 곧 누가 총대를 멜 것이냐의 문제로 비화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토드 필립스 감독이 영화<조커>의 메가폰을 잡게 되는데, 대중은 역시나 그에게 석연찮은 시선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출력을 문제 삼아서라기보다는 <행오버> 시리즈를 비롯한 코믹물 연출이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였으니 다른 무엇을 상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토드 필립스 감독은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지 알고 있었다. 조커 단독 영화를 찍되, DCEU와는 별개의 스토리를 펼치겠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정말로 영화<조커>에는 그 잘난 DC코믹스의 인트로가 나오지 않는다.

한편 거장 감독들의 페르소나로 이미 손색이 없던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배역 낙점은 히스 레저와 또 다른 조커의 탄생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조금은 있었다. 더구나 히스 레저 생전에 친분이 꽤 두터웠던 호아킨 피닉스라니. 상황이 이러다 보니 DC 측이 오지랖 떨지 않고, 감독만 연출에 심혈을 기울인다면 모자라지 않게 평타는 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돌았다.

그런데 티저 트레일러로 내놓은 결과물에서 바로 대박이 났다. 이때가 4월인데, ‘THIS FALL’로 시한을 때려 박은 텍스트가 시야에 들어온 후부터는 우려보다 기대가 주를 이루었다.

[티저 트레일러]

https://youtu.be/t433PEQGErc

 

2.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하지만 영화의 일부일 뿐인 티저만으로 흥행을 점칠 수는 없는 법. “예고편에 나온 씬이 그 영화의 전부더라, 뭐가 더 없더라그 동안 이런 말이 무성했던 영화들이 좀 많았던가? 관객들은 확실히 전보다 눈높이가 높아졌다. 더구나 킬링타임 용도의 영화들은 이미 스트리밍 서비스로 해결하고 있는 형편이라 작품다운 영화를 향한 기다림에 익숙하다.

98. 76회 베니스 영화제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손을 들어주었다. 코믹스 영화로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영화<조커>가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어찌 보면 토드 필립스 감독 본인으로선 DCEU와는 다른 조커 단독 영화를 만들겠다는 공언에 대해 나름의 책임 완수를 한 셈이다. 더불어 티저를 통해 이미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지만,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으로 빚어진 조커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더 높아졌다. 심지어 DC코믹스에 대한 오랜 불신을 가진 이들 중에서도 이를 계기로 영화<조커>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 경우가 꽤 많았다.

한편 <워너브라더스><DC> 입장에서는 간만에 월척을 건져 올렸는데, 그간 대중이 끊임없이 문제 제기한 헛발질의 원인을 이 기회에 발판 삼아 되짚어 심기일전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3. <아서 플렉/조커>, <슬랩스틱-재즈>

어쨌거나 조커 단독 영화이니 조커라는 캐릭터에 포커스가 맞춰질 수밖에 없다. 보통 단독 인물 영화는 배우 역량이 팔 할인데, 배우라면 누구든 한 번쯤 욕심을 내곤 한다. 왜냐면 자신의 내공을 맘껏 펼칠만한 캔버스로 그만한 게 없으니까.

그렇지만 이미 누군가 채색을 한껏 멋들어지게 해서 마스터피스를 만들어 놓은 경우는 그 욕심이라는 게 잘 나질 않는다. 어설프게 나섰다간 전작에 비교당하기 일쑤고, 필모그라피에도 오점이 남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치 않는 에너지 소모로 슬럼프에 빠지면 헤어나오는 데에 더한 힘을 들여야만 한다.

그럼에도 호아킨 피닉스는 조커 역을 수락했다. 배역을 두고 고민을 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앞선 캐릭터의 인상이 짙은 탓도 있겠지만, 그것만이 고민의 이유는 아니었던 듯하다. 여하튼 배역을 수락했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수락 이유에는 조커가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들, 즉 인물의 변화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감독 토드 필립스는 극 중 조커의 본 인물인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의 시작점을 사회적 계층에서 찾는다. 냉대와 차별에 오롯이 노출되는 하층민의 감정 역동을 바탕으로 깐 것이다. 이는 곧 고담이라는 양극화된 도시 환경이 조커라는 인격 형성에 미쳤을 영향을 상정한 것이기도 하다.

호아킨 피닉스는 하층민의 삶을 짊어지고 사는 인물 아서 플렉을 연기하기 위해 하루 사과 한 개로 버티며 23kg을 감량했다고 한다. 아마 몸 자체의 중량감이 자아내는 질감에도 사회적 계층 차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아서 플렉이라는 캐릭터의 질감은 상당 부분 호아킨 피닉스가 인식한 대로 깡마른 그 신체 중량감에서 비롯되는 게 대부분이다. 감정에 따라 활처럼 구부러지는 몸통, 기름기를 제거한 앙상함에 맞부딪치는 관절들. 그래서 아서 플렉의 몸은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서 플렉이 내적 변화를 거쳐 조커로 각성한 후부터는 질감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일단 앙상한 속살은 시선을 빼앗는 원색들로 치장한 광대 이미지 뒤로 가려진다. 그리고 위축된 몸은 점차 기세등등하게 활짝 편 몸으로 변화하는데, 그 과정이 과하지 않고 마치 재즈와 같다.

다시 말해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그가 보인 신체 연기 속에 인물의 입체적 묘사가 짙게 배어 있는데, 시각적으로는 슬랩스틱을, 청각적으로는 재즈를 느끼게끔 한다.

 

4. 호아킨 피닉스, 그 만의 에너지

한편 조커 배역을 맡아 분석하고 연기하는 동안 정작 호아킨 피닉스 자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앞서 조커를 맡았던 히스 레저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비주류의 삶으로 점철된 아서 플렉의 캐릭터에 자신의 지난 시절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둘 다일까?

어느 쪽도 만만치 않은 기억들이다.

같은 배역을 연기한 이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말이 사실 대중들에겐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대중은 배우가 겪는 바를 경험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옷을 물려 입었는데 먼저 입은 이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다면? 고스란히 그 옷을 물려받아 걸치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조커라는 배역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호아킨 피닉스에게 히스 레저는 각별한 친구였다. 온몸으로 조커라는 배역의 가면을 쓰고 지내는데, 생각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호아킨 피닉스가 히스 레저의 조커 캐릭터를 반영하려 애썼다거나 그런 건 또 아닌 듯하다. 베니스 영화제 기자회견 당시 호아킨 피닉스는 앞선 조커 캐릭터들을 참고하진 않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응답한 바 있다. 다만 뒤이어 덧붙이는 말에서 히스 레저의 조커에 대해 묻는다면, 그 캐릭터는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연기였다. 내가 촬영하는 동안 그가 마치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 나의 친구이자 형제 같은 히스... 사랑한다. 네가 그립다라고 밝혀 절친으로서 느낀 그 만의 감정을 드러내었다.

한편 호아킨 피닉스는 다소 다른 유년 시절을 보낸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의 부모는 히피 생활을 했다. 이들 부모는 자녀 이름을 짓는 데에도 히피다운 면모를 보였다. 호아킨 피닉스는 원래 이름이 리프(leaf)인데, 형이 리버(river), 누나가 레인(rain), 동생들은 각기 리버티(liberty), 서머(summer)였다. 뭐랄까, 그야말로 자연 친화적이고도 가치 지향적인 이름들이었다. 이들은 부모의 양육방식에 따라 공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자녀들은 저마다 재능을 살려 삶을 개척해 살았다고 전한다. 그 중 호아킨 피닉스와 형 리버 피닉스가 대표적이다. 둘 다 영화배우로서 자기만의 뚜렷한 색이 있었다. 특히 형인 리버 피닉스는 사실 호아킨 피닉스보다 앞서 영화계에서 이름을 알린 대배우이기도 했는데, 당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라이벌 구도에 놓일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던 배우였다.

그러나 1993년 리버 피닉스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고 만다. 당시 호아킨은 사망현장에 형과 함께 있었는데, 911에 구조 요청 음성 파일이 미디어에 그대로 노출되고, 장례식장에서 리포터가 함부로 시신을 촬영하는 등 폐를 끼친 까닭에 호아킨에게는 상당히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호아킨 피닉스에겐 남다른 기억들과 그로 인한 에너지가 잠재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조커라는 캐릭터는 여러 면에서 그 에너지를 유감없이 분출할 수 있는 하나의 창구이지 않았을까 싶다.

 

5. 이 끈적한 에너지에 얼마만큼 공명했나?

감독 토드 필립스는 기본적으로 조커의 스토리를 만들면서 그가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개연성들을 확보하는 데에 주력했다. 사회적 계층 인식을 바탕에 깔았던 것도 바로 그 이유인데, 감독 자신은 이와 같은 제작 배경이 단순히 조커라는 캐릭터의 탄생을 있게 한 근거들을 마련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영화 외적으로도 사회적 관심을 기대했던 것 같다.

감독은 이에 대해 9/26에 있었던 라이브 화상 인터뷰에서 직접 밝히기도 했는데, 영화 제작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으로 사회 문제 인식을 영화에 담은 것이라 응답했다. 특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사회적 불평등, 취약 계층이 받는 냉대 등을 담은 이번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보다 깊은 논의를 이어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동안 눈에 띈 것은 호아킨 피닉스의 긴장 넘치는 캐릭터 연기도 있었지만,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도 있었다. 특히 양극화된 계층사회에 대한 시사는 최근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생각나게도 한다.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몇 가지 과제가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하나는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아서 플렉이 점차 조커로 각성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충분한 설명력을 가지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양극화된 사회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과 전개 과정을 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는가일 것이다.

평단의 비평들을 보더라도 영화 <조커>를 향한 비판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조커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여러 개연성의 조합들에 의문을 표하거나, 사회적 문제 인식이 표출되는 방법 자체에 대한 의문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평단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고, 관객의 주관적인 감상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나와 스스로 평하고 싶다면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끈적한 에너지에 얼마만큼 공명했나?”

 

추가로,

(영화에서 조커로 각성 후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에서 나왔던 BGM)

https://youtu.be/zWakSmT2c3A

 

(토드 필립스가 쉬는 시간에 찍은 호아킨 피닉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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