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진리에 다가서는 한 방편이 된다. 교회에서 그리고 신앙인들 사이에서 성경 읽기는 권면해 마지않는 일이 되었다. 심지어 성경 통독 운동, 일 년 일독 프로그램 등이 장려되었다. 이러한 장려 프로그램 덕분에 조금이나마 성경과 친숙해진 신앙인들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성경을 읽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다수의 신앙인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경 읽기는 왜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일까? 단순히 의지의 문제일까? 쉼 없이 돌아가는 현대 사회의 스케줄이 내리 누르는 압박 때문일까? 성경 속 역사와 문화가 우리의 것과 다르기 때문일까? 물론 이에 대해 거론하는 여러 근거들이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경이 지니는 매체성과 관련하여 매체 철학적 접근을 해 보고자 한다. 성경은 기록된..
“결혼? 그거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잘 살아.” 친구의 말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혼해서 잘 사는 사람들 봐봐! 거의 서로 다른 성향끼리 만난 사람들이더라.” 또 다른 친구의 말, 역시나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도대체 어느 이야기가 맞는 걸까? 배우자 선택!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좋을까? 아니면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이 좋을까? 두 이야기 모두 맞는 구석도 있고 사람마다 다르니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이야기 다 맞는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중구난방으로 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서로 “비슷해서” 유익이 되는 부분과 서로 “달라서” 유익이 되는 부분이 한 커플 안에서 동시에 작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런 상황인 것이다. “난 저 ..
설렜다. 달콤하기만 했다. 그야말로 깨가 쏟아졌다. 그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깐... 그러나 깨도 한정 없이 쏟아지지 않는 법! 쏟아지는 깨도 다 떨어지고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다. 마냥 설레기만 하다가도 이렇게 틀어져 버리기 쉬운 게 남녀관계다. 물론 결국에는 풀린다. 대개의 경우 속이 타는 대립각을 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의 손을 내밀지만, 불안하다. 화해는 했지만 조만간 또 싸울 것 같은 예감에 불안한 것이다. 그 사람이 싫은 게 아니다. 단지 싸움이라는 게 싫은 것이다. 싸우는 건 누가 대신 싸워주고 나는 그냥 달콤한 연애만 하고 싶다. 그렇다. 누군들 싸움을 즐기겠는가? 하지만 나와 다르기 때문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상대의 매력도 그 다름이 참을 수 없는 차이로 다가올 때..
영화 는 다소 난해한 과학이론을 담고 있음에도 한국에서 관객수 천만을 돌파했다. 이에 대하여 여러 뉴스 보도들은 나름의 한국 흥행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를 테면, 대중의 교양과학 수준이 향상된 점이나 높은 자녀 교육열 등이 흥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분명 이러한 분석은 흥행의 통계 수치를 설명하는 데 있어 유효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와 같이 수치화 된 결과를 해석하기보다 영화 가 과학이론을 내러티브 속에 녹여내는 데 활용했던 ‘부성애’ 코드를 중심으로 다뤄 보고자 한다. 영화 는 지구적 재앙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재앙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또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가 주축이 되어 전개된다. 그러한 내러티브의 중심에 주인공 쿠퍼가 존재한다. 그는 가장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다...
"인지와 정서" 사이에,혹은"논리와 감정" 사이에갈등이 심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수의 연구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실제로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사실보다 '자신들의 신념과 맞지 않는 사실을 훨씬 더 혹독하게 평가'한다. 이와 같이 비판 정신이 편향적으로 민감한 것은 초등학교 초년 시절에 벌써 나타난다. 성인들의 정치 성향과 관련된 예를 들어 보아도, 시민들은 교육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이미 지니고 있던 정치적 선호를 지지하는 쪽으로 관련 정보에 대한 해석을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는 더 많은 지식이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유도된 오류를 지탱하는 자기합리화를 위한 지성적인 자원을 더 많이 제공하..
[서평] 이성규, 말이 길지 않아도 상징하는 바가 뚜렷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촛불시민'이라는 말이 그렇다. 이 말 한 마디면 민주주의적 감수성과 합리적 사고를 실천하는 시민 의식을 단번에 담아낼 수 있다. 그런데 '촛불'-'시민'이라는 표현은 다소 정치적이다. 때문에 이 표현을 그대로 둔 채 대중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들여다보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이때, 기존의 라벨을 잠시 걷어두고 새롭게 라벨링 하는 것도 하나의 접근 방법이다. ▲이성규(2018)ⓒ 북저널리즘 최근 를 펴낸 이성규는 그러한 접근법을 취한다. 뉴미디어 비평가답게 오늘날 대중의 또 다른 호칭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체감하는 대로 디지털 시대의 대중은 이전 시대의 대중과 다른 위상과 권력을 갖고 있다고 평한다. 그리고 균..
[리뷰] 80년 광주의 기억을 오늘 위에 되살리다 1980년 그 날이, 2017년이라는 화폭 위로 쏟아진다. 8월이지만 5월의 서늘함이 가득하다. 시간 위로 시간이 포개지는 걸 보니 매체의 힘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영화 가 환기시킨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이 온데 사방에 펼쳐진 기분이다. 광주의 기억을 담아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소설, 웹툰, 영화 등 그간 다양한 매체에서 이걸 다뤘다. 영화로 제법 알려진 (2007)만 해도 그렇다. 당시 680만 관객을 모았다. 천만을 넘은 에 비해 못 미치지만 초라한 성적은 아니다.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80년 광주 시민군 가두방송의 외침은 여러 매체와 영화 에서 재현됐지만, 잊지 말아 달라는..
겨울방학이 끝나 간다. 청소년 캠프 일정도 끝물이다. 청소년부 교역자나 교사들은 큰 행사 하나 지났다고 하며 한숨 돌린다. 아이들은 캠프 때 받은 은혜로 심기일전 중이다. 허나 아이들은 대체로 신앙이 아니라 학업의 현장에서 마음과 자세를 다잡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이틀 내지 사흘 동안 비전과 학업에 대한 결단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자리에 내던져진다. 비전이 명확하지 않은 아이들은 아직 출발선에 서지 못한 것만 같은 불안 속에 자리하고, 레이스를 시작한 아이들은 게으른 자신을 질책하거나 격한 담금질 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다. 물론 캠프를 주관하는 기관이나 담당 교역자는 이 레이스가 세속적인 레이스와 같지 않다고 선포한다. 국내 교육 현실을 개탄하고 입시 위주 상황에 내몰린 아이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