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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일제강점기(1900년대 초중반)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그리고 심심찮게 크게 히트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영화<암살>, <밀정>부터 해서 드라마<미스터 션샤인>이 그러했고, 속칭 국뽕! 이라고도 하는 민족성보다는 도리어 퀴어(queer)함이 돋보였던 영화<아가씨>의 경우도 1930년대가 배경이었다.





 

얼마 전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한 영화<말모이>의 선전을 여러 루트로 접했다. 극장가 소식이 불과 1~2주 사이에도 요동을 치는지라 이미 지난 일로 되어 버렸지만, 영화<극한직업>이 상영관을 집어삼키며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지 전까지만 해도 여기저기서 영화<말모이> 리뷰가 올라왔었더랬다.

 



그럼 여기서 굳이 재탕 삼탕 하는 영화 리뷰를 하려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냐? 그건 아니다. 리뷰는 검색 창에 치면 주르륵 나오니까 알아서 찾아보면 될 일이고, 여기서는 영화<말모이>의 중심내용이기도 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다뤄 보려 한다. 요사이 계속 한국문화사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는데, 함께 읽었던 소논문 중 관련 내용이 있어 가져와 담는다.

 

특히 강내희(2002)한국의 식민지 근대성과 충격의 번역”, <문화과학>(31)을 주로 참고했는데, 기본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성>에 대한 강렬한 감정이 1900년대 초중반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탈제국-국민국가> 성립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하여 확립됐다는 논점을 기저에 두고 읽어내려가면 이해가 쉽다.



 

제국의 확장과 더불어 삶의 영역을 침탈당한 피식민의 사람들은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자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연대하여 저항했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개념 하에 집합하여 에너지를 모은다는 것은, 반대급부적으로 모으지 못한 무언가도 동시에 생겨난다는 걸 의미한다. 이에 대해 르낭(Renan, 1990)은 민족의 본질 안에는 모든 개인들의 공통의 것이 담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망각 되는 것들도 많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민족의 본질은 모든 개인들이 많은 공통의 것들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많은 것들을 망각했다는 것이다.”(Ernest Renan, 1990, “What is a nation?” in Homi K. Bhabha, ed., Nation and Narration)

 

관련하여 강내희(2002)는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문화운동>도 이와 유사한 맥락을 가진다고 평한다.

 

민족문화운동은 정체성의 회복만이 아니라 새로운 구성, 즉 근대적 민족을 형성하려는 운동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민족 공통의 것을 추출하기 위해 민족의 많은 뿌리들을 배제하는 망각의 운동이기도 했다.”(강내희, 2002, p.89)

 

연이어서 강내희(2002)는 영화<말모이>의 내용과 유관한 <민족언어운동>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 가는데, <근대 한국어 문어체 형성 과정>의 경우를 예로 든다.

 

이런 민족문화 전략의 한 예로 민족언어운동을, 좀더 구체적으로 근대 한국어 문어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민족언어는 원래 존재하는 자연언어와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이 언어는 근대적 언어시장의 형성과 함께 출현하며 근대적인 사회적 제도와 상호 전제 관계 속에서 발전한다. 한국에서 새로운 문어체가 그 모습을 완성한 것은 일제의 식민지재가 시작된 이후이다. 근대 한국어 문어체 형성의 계기는 문자혹은 한문으로 인식하고, ‘언문국문으로 격상시킨 언어정책을 편 갑오개혁에 의해 주어졌지만, 한국어가 완전한 근대적 표현의 가능성을 얻게 된 것은 평서형 종결어미 ‘-체계가 근대소설에서 꼴을 갖추며 신문이나 잡지 등 근대적 대중매체들로 확산되기 시작한 1920년을 전후해서다.”(강내희, 2002, p.89)

 

원래 훈민정음 반포 이후로 한글 사용이 점차로 확장된 게 아니냐 반문하며, 도통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 인용문 하단에도 언급되어 있다시피, 평서형 종결어미 ‘-의 확산은 분명 이전 시대인 조선 후기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이는 도리어 ‘~입니다, ~했습니다가 널리 쓰이는 오늘날의 어투에 더 가깝다.

 

이에 대해 강내희(2002)는 직접적으로 민족주의 엘리트를 거론하며 <근대 한국어 문어체 형성>의 이면에 깃든 민족적 기획과 전략에 대해 덧붙여 이야기한다.

 

근대 한국어의 진정한 사용자는 민중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 엘리트였다고 봐야 한다. 종결어미 ‘-로 문어체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작가, 평론가, 기자, 학자, 과학자, 지식인, 관료 등 전문가이며, 이 전문가가 되는 길은 지금도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므로 식민지 사회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강내희, 2002, p.92)

 

이는 일제의 문화침탈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키고자 한 <-제국적 저항운동>의 성격을 깎아내리기 위해 한 말이 아니다. 당시의 <민족문화운동>은 그 저항적 에너지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다만 민족이라는 개념이 당시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되었음을 구체적으로 밝혔을 따름이다.

 

근대적 민족언어의 형성에는 목숨을 걸고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에 맞서서 싸운 민족주의 언어학자들의 희생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민족주의 엘리트의 민족 동원 전략도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강내희, 2002, p.92)

 

민족주의 엘리트들의 민족 동원 전략이라고 표현을 해 두니, 뭔가 머리 좋다고 으스대고 잘난 체 하는 것들한테 휘둘려 당한 느낌이기도 하고, 민중(오늘날 시민)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하고 되짚어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엘리트 지식인들은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대중의 힘을 끌어 모으려 부단히 아젠다 세팅을 시도한다. 정말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그들 나름대로 배운 걸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 보통 이런 일이니, 그냥 그게 그들의 하는 업이라 봐도 무방하다. 


다만 오늘날의 시민은 과거와 다르다. 엘리트 지식인들이 전문성을 앞세워 엮어 놓은 담론의 그물에 쉽사리 걸리지 않는다. 자본의 힘이 노동의 강도와 시간의 탈취로 깊이 관여하는 때인지라 담론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오늘날의 시민은 생사와 관련된 정보 수집과 이에 동원되는 매체와 채널의 다양함이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다룬 바와 같이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보며, 민족주의가 피식민 상황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좀 더 면밀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특히 제국적 상황에 반하여 기여한 부분이야 그간 넘치도록 확인했으니, 민족주의 자체가 역사 속에 활용되면서 어떠한 역학관계들을 파생시켰는지 원거리에서 조망하는 관점도 필요하다. 


그래야 단순히 태극기부대가 싫어서가 아닌, 왜 국뽕을 멀리하고 조심스러워 해야 하는지, 그 이면을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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